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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다리놓는 사람들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사회복지법인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차장

 

작년 8월, 교구 사회복지국으로 새롭게 발령을 받으면서 저는 대구가톨릭요양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목신부로 1년 6개월, 짧지만 깊이 정든 시간이었고 매일을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여기며 사셨던 분들 속에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움 가득한 작별을 한 뒤 드디어 교구 사회복지국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여기서 저에게 두 가지 직책이 주어졌는데 하나는 교구 인사에 발표된 것처럼 사회복지국 차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획실장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것이 별도의 또 다른 직책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이 글을 기회삼아 우리 교구의 사회복지 조직 구조와 함께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교구에는 사회복지시설 법인이 10개가 있고 산하 시설을 모두 합치면 100여 개가 있는데 구체적으로 제가 속한 법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복지시설과는 별도로 각 본당에서도 본당 구역 내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본당사회복지위원회’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차장이란 직책은 교구 10개 법인 사회복지시설의 연합인 ‘사회복지시설협의회’와 본당 사회복지위원회의 연합인 ‘본당사회복지협의회’를 아우르는 전체 ‘교구 사회복지국’ 업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기획실장이란 직책은 제가 실질적으로 소속된 법인인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내부 역할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업무는 고사하고 저는 이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우리 교구는 타교구에 비해 사회복지 사업의 규모가 상당한 편입니다.

 

첫 출근날, 짐을 제대로 풀기 전부터 정신없이 일을 배워나갔고, 아직도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맡겨진 직함들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사회복지 경험과 실무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는 개인 사무실이 아니라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한편에 제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직원들에게 거꾸로 일을 배웠습니다. 현장 중심이었던 요양원 원목신부의 업무와는 달리 이곳은 주로 행정적인 일을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도 할 일도 산더미 같았습니다. 다행히 사회복지국 직원들은 모두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내로라하는 베테랑급이고,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배려심이 장착된 사람들처럼 굉장히 친절한 분들이어서, 본인들 일을 하기 바쁜데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를 적극적으로 잘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업무를 익히는 와중에 벌써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연초부터 계획된 큰 프로젝트 두 가지가 코 앞에 닥쳤는데요, 첫 번째는 2022년도 교구 전체 사회복지시설들의 사업방향-1년 슬로건을 정하는 일과 대림 제3주일인 자선주일에 교구 역사상 최초로 전 본당에서 동시에 실시하게 될 밀알회 회원모집 프로젝트였습니다. 그중에서 시간적으로 먼저 해내야 할 임무는 슬로건 작업이었습니다. 보통 연말쯤 실시되는 사회복지시설장 연수에서 최종적인 내년도 사업방향과 슬로건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데, 저는 국장 신부님의 의견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놓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해답을 주셨습니다. 마침 사회복지 사무국 전 직원은 2021년 초부터 매일 아침 조회 시간마다 교황님의 회칙 『모든 형제들』을 한 두장씩 함께 소리내어 읽어나가던 중이었는데, 뒤늦게 독서에 참여한 저는 어느 날 회칙의 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참고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세번째 회칙 『모든 형제들, Fratelli Tutti, 2020』은 생태적 회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전작 『찬미받으소서』에 이어서 나온 후속편이자 완성편으로서, 특히 코로나19로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교황님의 제안입니다. 그 회칙을 읽으며 마음 속에 떠오른 슬로건이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해당 부분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자.’고 할 때 보통 직접적인 형태의 사랑의 실천만을 떠올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노인이 강을 건너고 싶은데 건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느 누군가는 그를 등에 업고 직접 강을 건넙니다.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이지요. 가령 정치인과 같은 보다 더 큰 책임과 역량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그 강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란 겁니다. 해당 내용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요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만 그 사랑의 형태는 각자의 위치와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리놓는 사람들”이라는 사회복지시설협의회의 2022년 슬로건이 탄생했습니다.

지난 연말 한티에서 있었던 시설장 연수를 통해 이 슬로건은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갖추었습니다. ① 우리는 카리타스 파트너로서 상호 교류하는 소통의 다리를 놓습니다. ② 우리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선도적인 다리를 놓습니다. ③ 우리는 동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관심의 다리를 놓습니다. 각각의 작은 슬로건에는 좀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붙어 있습니다. ① 카리타스는 복지현안 해결을 위해 연대하며 서로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공유합니다. ② 카리타스는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역사회 이슈와 우리의 과업을 연결합니다. ③ 카리타스는 인격적인 소통 안에서 일터의 즐거움과 업무성과를 함께 이룹니다.

 

“다리놓는 사람들”이란 큰 주제 안에 놓여 있는 각각의 작은 슬로건은 저희 대구 카리타스 전체 시설 직원들의 다짐문이자 공동선언문입니다. 저희들은 ‘카리타스’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각자의 일을 하기에 바빴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며 먼저 동료들 간에, 그 다음 대구 카리타스 각 시설들 간에 일치와 친교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카리타스와 지역 사회 간에 다리를 놓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 슬로건은 비단 교구 사회복지시설 직원들만의 외침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통이 가득한 요즘 세상 속에서 교구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복음적인 캠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년에 시작한 ‘말씀의 해’를 올해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 할 모든 교구민들 역시, 하느님 말씀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사랑의 다리를 놓는 일에 함께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