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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전쟁과 죽음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지난달에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교회는 지금 수난의 사순 시기를 보내며 부활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죽음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상황입니다. 죽음은 지금의 모든 기대와 희망을 끝장내 버립니다. 장래를 위해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곧 결혼을 앞둔 연인들,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꿈에 부푼 가정, 매사에 아껴 쓰며 저축해서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 퇴직하고 이제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려고 계획하는 사람들…. 이 모든 상황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거나 죽음을 앞에 두는 경험을 한 이들에게는 삶의 큰 희망이었던 이 모든 일이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특히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삶의 의미와 희망마저 앗아가 버린다는 점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합리화하는 전쟁이야말로 인류가 피해야 할 최악의 죄악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병법서요 전쟁의 교과서라 할 『손자병법』에서 손무(孫武)는 전쟁의 진정한 목적은 전쟁을 멈추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병법서를 쓴 주된 이유는 전쟁이 난무하는 시절에 오히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쟁을 일으킬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전쟁에 이기더라도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사상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노여움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기쁨으로 바뀔 수 있고, 분노도 다시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1)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 작은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백성들만 죽음으로 내몰려 고통받았습니다. 국가 간에 영토 문제나 역사적인 관계 때문에 감정이 안 좋을 수도 있고, 군주가 사사로운 원한이나 분노에 휩싸여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한번 일어나면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고, 수많은 군인과 백성들이 죽음의 위험에 처합니다. 전쟁의 승패에 상관없이 많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축복 속에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이런 권리가 한순간 박탈당하고 거대한 폭력 앞에서 생명의 존엄성도 찾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바로 전쟁이요 죽음입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보내며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은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리라고 알려 주십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사순 시기 담화문을 통해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세계적인 감염병과 전쟁 등 죽음의 세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손자병법, 화공편. “怒可以復喜,   可以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