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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죽음에서 생명으로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사순절이 시작되었던 3월의 첫 금요일, 제가 일하고 있는 성당의 성당지기 페터 아저씨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암 투병 중이셨던 걸 알고 있었음에도 너무나 급작스러운 이별이었습니다. 늘 세심하게 미사를 준비하고, 다정하게 복사단을 챙기며 밝게 일하셨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페터 아저씨의 죽음은 더 갑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50여 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미사를 준비했던 분답게 페터 아저씨는 돌아가시기 전에 본인의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와 연주곡을 모두 정해 주셨습니다.

가톨릭 성가책에도 수록되어 있는 4번 〈찬양하라〉, 77번 〈주 천주의 권능과〉를 비롯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연중 시기 성가와 부활 시기 성가들을 골라 놓았고, 장례 미사는 ‘페터의 부활 기념 미사’라고 이름 붙여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평소에 가장 존경하던 소화 데레사 성녀의 말씀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삶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를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몸소 그 믿음을 삶으로 보여 주신 아저씨의 빈자리가 부활 시기에 유독 더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부활 시기 전례 음악 중에서 페터 아저씨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파스카의 희생 제물(Victimae paschali laudes)〉입니다.

11세기 경에 작곡된 그레고리안 성가이며 전례 찬가라고도 하는 부속가입니다. 부속가는 ‘덧붙인 노래’, ‘딸림노래’라는 뜻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독서와 복음 환호송 사이에 낭송 또는 노래합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의 부속가는 〈파스카 희생 제물(Victi­ mae paschali laudes)〉이며, 아마도 한국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지 않고 낭송하는 경우가 더 많아, 우리에겐 배우 강동원이 직접 부른 영화 ‘검은 사제들’의 OST로 더 유명할 수도 있습니다.

부속가는 희망과 신앙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매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 부속가를 연주하고 들을 때면 항상 페터 아저씨가 떠오를 듯합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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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곳에서 더이상 페터 아저씨와 새로운 추억을 쌓고 일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아저씨의 삶과 죽음을 통해 보여 주신 부활에 대한 견고한 신뢰와 믿음은 평생을 사는 동안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참혹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은 생명으로 건너가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새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삶 안에 부활의 희망과 믿음이 깊게 뿌리내려 매일 새롭게 부활의 기쁨 안에 머무르는 날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시 살아나, 여전히 당신 안에 있나이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