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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 | 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 영원히)

 

편지를 시작하면서 4월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해 봅니다. 벚꽃이 필 때 그 설렘…, 그리고 꽃비가 되어 내릴 때의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감상에 젖어 봅니다. 곁에 있을 땐 몰랐던 아름다움을 떠나고 나면 느낄 때가 있지요? 그래도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4월의 편지라 감상에 좀 젖어 보았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그리운 게 참 많거든요. 그럼, 이제 정신을 좀 차리고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제목이 ‘!@#$%&!’라 당황스러우시죠? 저의 편지들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늘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건 또 뭐고?’ 이런 느낌일 겁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들이 느끼는 당혹감보다 좀 더 강한 당혹감을 저는 ‘러시아 말’을 만나면서 마주하고 있답니다. 이번 4월호에서는 ‘언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사용하고 있는 ‘러시아 말’에 대해 말이죠.

선교사로 있으면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으나 저의 경우는 외국어(러시아 말)입니다. 언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답을 찾았는데 그게 뭐냐면 ‘언어를 많이 사용하도록 환경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 오기 전에 주교관에서 주교님과 함께 살아도 되는지 여쭙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매일매일 러시아 말을 듣게 될 것이고, 또 배우는 만큼 사용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멋진 생각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멋진 생각과 다르게 현실은 고통입니다. 물론 고통을 겪어야 부활이 오겠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언제 부활이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말을 배우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모른다고 해서 속이 상하지도 않고요. 예를 들면 러시아 말 수업을 하는 것, 앉아서 홀로 공부하는 것, 배운 말을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장소에서 써먹어 보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은 오기 전에 각오를 했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어떤 경우냐면, 매일매일 주교님과 교구청 직원들과 함께 식사할 때입니다. 보통 식사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언어 수업과는 다르게 삶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아주 편한 마음으로 합니다. 그것도 식사를 하면서요. 회의 같이 정보를 주고받는 자리라면 못 알아들었을 때 다시 물을 수도 있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크게 웃고 있는데 못 알아들었다고 손을 들고 물어 볼 수는 없겠더라고요. 아시잖아요? 농담과 웃음은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요. 웃고 즐기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 손을 들고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는 것은… 으… 생각만 해도 어색합니다. 여전히 무슨 느낌인지 모르시면 나중에 어떤 모임이 있을 때 다들 웃고 있는데 손을 살며시 들고 “왜? 무슨 일인데?” 하고 한번 물어보세요. 그러면 제가 어떤 기분인지 아실 겁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면 참을 만합니다. 매번 식사 때마다 그 ‘어색함’을 느낀다고 상상해 보세요. 1년 이상을 말이죠. 좌절입니다. 좌절!

다들 웃고 즐기는 식사 때 저는 이유도 모른 채 박장대소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웃는지도 모르고 웃는 거죠. 때때로 주교님이 왜 웃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한번 더 웃습니다. 웃긴 에피소드라고 하지만 언어를 배울 때 좌절감이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되도록 러시아 말을 써야 할 상황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죠. 외국 사람을 피하고 외국어 쓸 상황을 피하게 됩니다. ‘포기해 버릴까?’라는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먹으면 영화처럼 그 순간, 하느님의 은총이 내려서 외국어가 모국어처럼 술술 들렸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식사부터 좌절감이 계속 이어집니다. 선교사며 또 사제라 이런 감정을 쉽게 표현하며 투덜거리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속에서는 날마다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귀를 더 쫑긋 세우고 들어주세요. 사실 언어 이야기를 꺼낸 건 지금부터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서였거든요.)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니 (들린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아!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시는구나.’라고 대충 감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또 다른 세계’라고 한다면 그걸 조금씩 알게 된다는 것이죠. 또 다른 세계를 알아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폭을 조금 더 넓힐 수가 있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니까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면 갈수록 내 언어가 바뀌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뀝니다. (겸손하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마음, 특히 내가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니,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도 깨닫게 되고 또 소통의 방식도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삶이 굉장히 단순해집니다. 제가 지금 카자흐스탄에 온 지 6년이 되었으니까… 여섯 살 아이가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가만히 들어보세요. 어려운 말로 비비 꼬아 표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단순하게 이야기 하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굉장히 단순하게 이야기합니다. 왜냐면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이의 마음이 순수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렵게 표현 할 언어를 배우지 않아서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6년을 배웠다고 하지만 얼마나 배웠겠습니까? 그래서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둘러서 표현하지 않죠. 좋게 말하면 삶이 단순해지는 것이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멍청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멍청함이 참 좋습니다. 좋아.

아이쿠! 벌써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언어 이야기는 할 게 참 많은데… 다음 달에 또 들려 드릴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4월의 아름다움을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눈에, 마음에, 기억에 잘 담아두세요.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