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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자선과 봉헌의 차이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 | 사회복지법인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차장

 

혹시 자선과 봉헌의 차이를 아시나요? 엄밀한 신학적 구분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약 자선이 이웃을 향한 것이라면 봉헌은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선이 가진 것 가운데 일부를 내어놓는 것이라면 봉헌은 전부를, 혹은 완전한 마음을 담아 바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 헌금을 칭찬하신 이유는, 그것이 그녀가 가진 전부(봉헌)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향한 내적인 봉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웃을 향한 외적인 자선에도 궁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하느님께 자유롭게 봉헌할 수 있다면 이웃을 향한 자선 역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바라시는 것은 봉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가진 것의 전부, 나아가 우리 자신을 당신께 바치길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그러실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귀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창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께 등돌리며 끊임없이 죄를 지었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어 또다시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구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은 마치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실제 구체적인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을 세 부류로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삶의 테두리 밖에 예수님이 계시는 경우입니다. 왜 예수님이 밖에 계시냐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삶 속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예수님께서는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십니다. 내 삶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대로 삶이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신앙인으로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은총의 작용을 거부하며 그저 자신의 본성대로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척이나 고마우신 ‘구원자’일지언정, 내가 그 분을 따라나설 만큼의 ‘주님’은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마치 손님처럼 대하는 경우입니다. 그분을 가끔(일주일에 한번 정도?) 초대하긴 하지만 여전히 집의 가장 큰 안방은 본인이 차지하고 예수님은 그저 손님방에 머물도록 하며 내가 허락하는 몇몇 방만 열어보일 뿐입니다. 내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그분의 가르침과 인도에 따르지만 경제적인 영역이나 시간적인 영역 등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나’라는 집의 진짜 주인은 예수님이시기에 그분께 언제든지 문을 열어 드립니다. 안방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방문을 그분께 열어 드립니다. 생각의 방, 감정의 방, 의지의 방, 시간의 방, 인간관계의 방, 능력의 방, 재산의 방 등등. 그래서 모든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그분께 먼저 의견을 여쭙니다. ‘주님, 그 사람만 보면 제 속에서 이런 감정이 드는데 어떻게 할까요?’, ‘주님, 이 돈은 제가 어디에다 어떻게 쓰면 될까요?’, ‘저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진정한 나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삶의 모든 주도권을 그분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봉헌일 것입니다. 이러한 봉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저에게 명쾌하게 알려주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저는 7년간 볼리비아에서 선교를 했는데, 한번은 한국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교구 성모당에서 해외 선교 후원회 미사를 주례한 적이 있습니다. 별도의 선교 모금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사를 마치자 어떤 어르신께서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흰 봉투를 내미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지난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않고 기름값을 아껴 모은 돈입니다. 이걸 어디에다 쓸지 몰라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부님 손에 쥐어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순간 멍해져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가서 확인해 보니 백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런게 바로 봉헌이구나 싶었습니다. 어르신이 바친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닌 봉헌이며, 가진 것의 일부가 아닌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바친 동전 두 닢의 봉헌을 칭찬하셨을 때 바로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싶었습니다.

 

지난해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전 본당에서 동시에 밀알회 회원 모집을 실시했던 일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얼마나 많은 분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회원 모집을 위한 미사를 나가기 전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서 바쳤던 기도에서 저는 이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선 저부터 제가 받은 것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의 재능과 시간과 재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시 주님께 기꺼이 돌려드리고자합니다. 이 아름다운 봉헌의 대열에 동참해 주고 계시는 모든 분께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시간 저는 해외선교를 하면서, 또 지금은 교구 사회복지회 공식 후원회인 밀알회를 담당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한 분 한 분 다 알지는 못하나 그 귀한 봉헌을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시리라 믿으며 후원자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왔기에 우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매 순간 주님께 봉헌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