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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러시아어 강론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 | 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지난 편지를 보내고 어느 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물으셨습니다. “Как дела?”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고 이 말만 생각난다고 하시는데, 제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뭔가 모르게 이해 받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외국 사람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넬 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통하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었거든요. 상대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질 때 마음이 훈훈해 지네요. 관심 좀 가져달라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니면 타지에서 외롭거든요.

오늘은 지난 편지에 이어 ‘러시아 말’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러시아 말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 한번으로 끝내는 것은 아쉽거든요. 그래서 들려 드릴 이야기는 ‘러시아 말 강론’입니다. 한국어도 아닌 러시아어로 강론을? “오?” 하실 수도 있지만 현실은 “아!”(비명소리)입니다.

우선 아셔야 할 것은 저의 러시아어 수준입니다. 제가 여기 온 지가 6년이 되어 간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한국에 있을 때 러시아어를 공부한 적은 없고 여기에 와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러시아어 수준은 여섯 살 아이가 말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30대 후반에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섯 살 보다 조금 더 낮은 다섯 살 정도 아이가 말하는 수준입니다.

‘다섯 살 아이의 러시아어 수준 + 한국어를 쓰는 40대 초반 남자의 뇌 = 강론’

이것이 저의 러시아어 강론 공식인데 좀 더 설명하자면, 뭔가를 표현하고 싶지만 러시아어가 자유롭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을 품고 겨우겨우 몇 문장을 만들어 전달하는 강론입니다. 이 ‘공식(?)’을 바탕으로 러시아어 강론이 탄생하는 과정을 말씀드릴게요. 처음에 강론을 준비할 때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즘 기술의 엄청남을 느끼곤 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번역기는 문장을 다른 언어로 바꿔주기는 하지만 생각의 체계는 바꿔주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 냐면, 제가 외국에서 태어난 건 아니기에 당연히 한국어 사고 체계를 바탕으로 한국어 강론을 먼저 쓰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어 강론을 번역기에 넣습니다. 그러면 한국어 사고체계가 바탕이 된 외국어 문장의 강론이 나옵니다. 뭐 어떻든 말은 된다고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어는 동사가 앞에 놓이고 한국어는 동사가 뒤에 놓입니다. 좁은 시선으로 보면 문장의 구조가 다르다고 하겠지만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보면 동사의 위치에 따라서 생각 하는 체계가 달라집니다. 다른 사고체계로 인해 미묘하게 다른 점을 느낀다는 것이죠. 러시아어로 강론을 하는데 신자석에서 쌩한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분명히 러시아어인데…. 이건 아니다 싶어 조금씩 다른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어 사고체계로 강론하기 위해 일단 되든 안 되든 러시아어 독서와 복음을 읽고 사전을 동원하여 자세하게 번역하고 어디에서 감동을 받는지 찾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로 독서와 복음을 볼 때와는 다르게 감동을 받는 부분도 달랐습니다. 이 점이 제 자신도 참 신기한 부분입니다.

러시아어 복음을 보고 감동 받은 부분은 찾아냈으니 이제는 그 마음을 표현할 길만 남았죠? 다섯 살 아이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아주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죠? 어려운 단 어를 쓰지 않고 말이죠. 일단은 제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어 단어로 복음에서 감동 받은 부분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단어가 부족하겠지요? 사전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겨우 한 문 장, 두 문장 완성을 합니다. 한국어로 강론 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지도 못합니다. 왜냐면 (지금쯤이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그 정도 수준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딱! 필요한 말만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러시아어 강론을 하나 보여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은 마태오 복음 5장 17-19절입니다.

 

Не нарушить пришёл Я, но исполинить

(나는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지 않았다. 완성하러 왔다.)

 

Хочу задать вопрос ; Какой метод Иисус исползует чтобы исполнить закон или пророков?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 율법이나 예언서를 완성하시나요?)

 

Просто любить! Только любить!

(사랑뿐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Без любви не могут исполнить закон или пророков. Иисус уже показывал с своим примером то, чтобы исполнить.

(사랑 없이는 율법이나 예언서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범으로 그 완성을 보여주셨습니다.)

 

Поэтому нам нужно поступать как Иисус! Не хватает только соблюдать закон или пророков.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Давайте добавить любовь в кождом поведении как сказала Мадре Тереса.

(모든 행동에 사랑을 보태도록 합시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말씀하셨듯….)

 

‘Do small things with great love’

(‘큰 사랑을 가지고 작은 일을 행합시다.’)

 

Удачи!

(행운을 빕니다!)

 

너무 단순한 강론이지요? 위의 강론에서도 러시아어 문법이 맞는지 철자가 맞는지 잘 모릅니다. 모르면서도 어떻게든 표현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요.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드려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네요. 그래도 한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겨우겨우 문장을 만들어 말하는 강론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겨우겨우’에 힘을 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이만 인사드리고 얼른 도망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