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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버릇없는? 아니면 아주 친한?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Христос воскрес! (크리스토스 바스크레스! :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Воистину воскрес! (바이스티누 바스크레스! :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왜 6월에 부활 인사를 하냐구요? 잡지에 글이 실리기 전에 미리 원고를 보내는 사실은 아시죠? 제가 4월호 글을 쓸 때는 2월이었거든요. 미리미리 생각해서 부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하고 놓치고 말았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6월호는 제가 부활을 맞이한 4월에 글을 보내기에 늦었지만 지금 부활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짜로 예수님 부활을 경험해야 인사도 가능하네요.

이번과 다음 편지에는 특별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저와 함께 살고 계시는 알마티교구 호세 루이스 뭄비알레(Jose Luis Mumbiale) 주교님이십니다. 주교님과 제가 어떻게 함께 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할게요.

우선 주교님과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해 보시겠어요? 어떤가요? 쉽게 만날 수 없는 분이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좋긴 하지만 굉장히 조심스럽고 혹여 예의에 어긋나면 어쩌나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들에게 주교님은 ‘가까이 하고 싶지만 조심스럽게 대해야 될 분’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또 사회 안에서의 위치 때문에 친하다고 해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주교님께서 괜찮다고 하셔도 조금이라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문화가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지금부터 들려 드릴 이야기는 그런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바오로 미끼 신부가 굉장히 버릇이 없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반대로 ‘주교님과 어쩜 저렇게 친할 수 있을까?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벽이 잘 느껴지지 않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생각하시는 분 자유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혹시나 질책을 하실 거면 이곳에 오셔서 주교님과 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먼저 보고 듣고 느끼고 나서 해 주시면 굉장히 고맙겠습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사람의 관계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거든요. 이 타이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한번 읊어야겠습니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

 

첫 번째 이야기 :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주교님과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제 발에 머물게 되었는데요. 저는 맨발, 주교님 발은 양말에 실내화까지… 늘 편안하게 가족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던지라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모습 이 그날따라 들어왔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서라면 상상 할 수도 없겠지. 주교님 앞에서 편한 복장에, 맨 발에, 자세는 또 공손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너무 편안함을 주셔서 ‘아! 이분은 주교님이시지.’ 라고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주교님’보다 아버지, 친구, 동료와 같은 단어가 더 적절할 듯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 호세 루이스 뭄비알레 주교님의 뒷모습이 보이시죠?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바로 설거지입니다. 주방 싱크대에 식기류가 쌓이면 주교님이든 저든 아무나 정리를 합니다. 이번엔 주교님이 가시더니 설거지를 시작하십니다.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해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의 정서상 주교님이 움직이시면, 혹은 어른이 움직이시면 아랫사람 이 달려가서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는 기어코 어른을 자리에 앉힙니다. 그런데 주교님이 설거지를 하셔도 앉아있는 저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냥 가족 중 한 명이 설거지를 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할 때도 있습니다. (너무 버릇없어 보일까 봐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할게요.” “아니다. 내가 할게.” 라는 실랑이도 안 합니다. 이런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말로는 표현이 어렵지만 그래도 좀 설명을 붙이자면 이렇습니다. '예의’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절대 이러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가능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 주교님께서 손가락 치료를 하신다고 탁자 위에 잠시 반지를 빼둔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저의 장난기가 발동했죠. 결혼식 날 신부가 반지를 받기 위해 신랑에게 손을 내밀듯 저도 왼손을 주교님께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주교님께서 반지를 스윽 끼워 주십니다. 그러면서 한바탕 웃습니다. (사진은 주교님 손에 끼워진 반지입니다. 제 손에 반지를 끼워 주셨을 때는 찍지 못했네요.)

제가 참 버릇이 없죠? 아니면 주교님과 정말 친하게 지내는 건가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참 좋습니다. 참! 이쯤 되면 주교님의 얼굴이 정말 궁금하시죠? 얼굴 공개는 음… 다음 호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궁금증이 있어 야 또 기다려지잖아요.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