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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꿈을 이루는 사람들


글 허진혁 바오로신부|교구 사회복지국 차장

 

볼리비아 선교사로 살던 시절, 저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차에 태워 병원과 약국을 자주 다녔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되었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선교사제로서 단순히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그야말로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섬겼던 그분들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돌봐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병원이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상상 밖 현실에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일을 우리 교구는 이미 하고 있었고, 심지어 30년째 그 일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성심복지의원”(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입니다.

1991년 5월, 성심이비인후과 원장이셨던 故 김영민 박사께서 병원 건물을 교구에 기증하시면서부터 시작된 성심복지의원(현재 건물은 성 루까 의원의 故 임학권 박사 기증)은 보험료를 내지 못해 의료보험이 말소된 분이나 주민등록이 없는 노숙인 등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기 위한 ‘무료 병원’입니다. 제도권 밖,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고자 일체의 국가보조금 없이 온전히 밀알후원금과 교구의 지원, 그리고 수백 명의 의료진(치과, 내과, 정형외과, 피부과, 신경외과, 한방과)과 봉사자들의 도움만으로 30년째 진행 중인 생생한 기적의 현장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어 사회복지제도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지역 사회 안에는 아무런 의료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3천 여 명의 난민, 외국인 근로자, 노숙인,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시다면 아마 이들을 가장 먼저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심복지의원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 가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꿈의 병원입니다. 구청, 시청 등의 관공서 뿐 만 아니라 언론, 대기업 등등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사회복지재단에서 주는 상과 2017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자랑스런 우리 교구의 병원입니다.

 

지난 4월 30일 꾸르실료교육관에서 있었던 설립 3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전 자료들을 살펴보며 제가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성심복지의원은 단순한 하나의 병원 건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주신 봉사자와 후원자 한 분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란 어떤 고정된 위치에 지어진 물리적인 성전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이시고, 그분의 뜻과 운명을 함께하고 자 모인 이들 그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심복지의원의 의료진과 봉사단에게 특별히 감사한 점은, 이분들이 단순하게 물리적인 의료 봉사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셨던 전인적인 돌봄까지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카리타스 정신 그 자체입니다.

성심복지의원에서 돌보는 어르신들은 허물어진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허름한 집에 홀로 사시거나 몸이 불편하여 집 밖에 나오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심복지의원의 봉사자들은 그런 분들을 직접 방문하여 진찰하고 치료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도 들어 드리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도 해 드립니다. 오지 마을을 방문할 때는 영정 사진 봉사팀이 함께 방문하여 사진도 찍어드립니다. 때론 협력병원의 도움을 받아 시설 여건상 본의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수술을 도와드리기도 하며, 생활 중 필요한 응급처치법과 병에 대처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 알려 드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종교에 상관없이 남은 여생과 죽음을 어떻게 잘 맞이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도 나누는 영적 치유의 시간을 마련하시는 원장님도 있습니다. 지역 어느 식당 사장님들의 기꺼운 후원으로 홀로 사시는 저소득층 어르신들에게 한상 가득한 맛난 점심을 대접해 드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중단되었지만 10여 년간 매월 첫째 주일에 무료 급식 지원을 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공휴일인 성탄절 아침에 물새는 화장실 수리를 위해 기꺼이 오셔서 무료로 도움을 주신 산타 사장님도 계시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엄마를 도와 봉사를 시작해 8년간 매주 토요일 빠짐없이 나와 의료진 도우미 봉사를 해 준 예쁜 청년 봉사자도 있습니다. 어느 날 사회인이 된 그 소녀가 첫 월급으로 보내 준 귤 몇 박스는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성심복지의원에서 봉사를 하며 성소를 키우다가 이제는 어엿한 교구 사제가 된 신부님도 있습니다.(누굴까요?) 어떤 어르신은 기초 생활 수급자셨는데, 정신 장애가 있는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대화조차 어려운 정도의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그저 길거리에서 동냥으로 살림에 보태는 정도의 일밖에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할머니는 성심복지의원을 다녀갈 때마다 꼬박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길에서 동냥을 하는 정신 장애를 가진 걸인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금쪽같은 아들이었던 것이지요. 아침 식사를 거르신 채로 성심복지의원을 찾아오시는 그 어르신을 위해서 어느 날부터 빵과 우유를 준비했지만 어르신은 그마저도 드시지 않고 아들을 위해 챙겨 가시는 것을 보면서 부모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반면 안타까웠던 사연들도 있습니다. 피부과 진료를 오시는 어느 할머니의 예후가 좋지 않아 종합병원 검진을 권했습니다. 할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결국 원장님이 직접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가족들에게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핀잔을 들은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홀로 사시는 한 어르신이 성심복지의원에 찾아와서 자신이 치매가 아닌지 염려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봉사자가 동행해서 검사를 해 보니 다행히 치매는 아니었고 대신 심한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사시는 어르신이라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드셨던 것입니다.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을 받고 꾸준한 상담치료를 통해 다행히 병세가 많이 호전된 어르신은 평안함과 삶에 대한 용기를 회복하셨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10년이 무려 세 번이나 지난 만큼 성심복지의원에는 그 밖에도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적인 사연과 미담들이 많습니다. 미용 봉사팀, 시각장애인 안마 봉사팀, 발지압 봉사팀 등등 그동안 함께 해 주신 수많은 봉사팀들도 여러분들께 모두 자랑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하는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마르 14,7)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성심복지의원이 30년째 행하고 있는 이 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함께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 세월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 그리고 봉사와 후원의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