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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빛으로 돌보시는 하느님


글 황종열 레오 I 평신도 생태영성학자

 

〈빛〉 독자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5월호에서 함께 나누기 위해 쓴 원고가 양이 넘쳐 나누어 연재하게 되어 지난달에는 원고를 보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서 다시 원고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번 호부터는 2022년 1월호에서 제안한 방식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태 영성 살이와 뇌작용을 함께 만나실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보려고 했지만 제가 원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아 이번 호부터 다시 생태에 집중해서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약속한 것을 12월까지 지키지 못하게 된 점 부디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 지구촌 사회에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달라졌는데요. 이제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날들이 가능해지는 새로운 때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봄을 지내고 어느새 여름 한복판을 지나는 중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빛이 그분의 온 창조물에게 선물로 작용하는 영성적 실재에 대해 성찰한 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3-4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맨 처음에 빛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아침에 눈을 뜨고 빛이 비치는 것을 보시면서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빛 안에서 살고 자고 일어나고 움직입니다. 참으로 세상 만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신 이 빛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오늘 원고는 특히 〈빛〉잡지의 이름을 각별히 기억하면서 쓰게 되는데요, 성녀 힐데가르트는 이 사실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광채를 가지지 않은 피조물은 없다. 초목이건 씨앗이건, 꽃봉오리건 광채가 없이는 피조물일 수 없다.”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의 손길이 닿아서 생겨난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고유한 광채를 띠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존재들로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이것이 신학적 실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하느님의 광채로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여러분이 하느님의 빛으로서 거룩한 존재들이라는 말인데요, 어떠신지요?

만물이 하느님에게서 와서 그분의 광채에 닿았다는 것은 모든 만물이 하느님의 빛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만물이 그분의 빛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기와 관계된 만물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감동인 것은 하느님의 광채에 닿아 자기의 색을 갖고 있는 모든 창조물은 생명을 낳고 치유하는 힘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온 창조물은 하느님께 빛을 받아 창조되어 하느님의 색과 힘을 전달할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1905년을 ‘기적의 해’로 불리게 만든 인물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해에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만물이 빛과 연결되어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물리학의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질량(무게)을 갖는 모든 존재의 에너지는 그 존재의 질량에 빛의 속도(1초에 300,000km)를 두 번 곱해서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식으로 쓰면 이렇습니다.

 

E(에너지) = m(질량) x c(빛의 속도) x c(빛의 속도) => 줄여서 쓰면 E = mc2

 

하느님의 빛 안에서 하느님의 빛을 받아서 살고 있는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살림과 치유에 동참하면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의 상처를 돌보고 낫게 하는 어머니 같은 역할에 참여할 힘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부여받은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지렁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빛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학적 실재를 새롭게 자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2008년 경 여름에 전라남도 장흥에서 항아리 두 개와 낮은 화분형 그릇으로 이루어진 지렁이 키우는 세트를 선물받았습니다. 채소를 다듬고 남은 것이나 과일 껍질 같은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지렁이한테 갖다주었습니다. 그러면 지렁이들은 이것을 먹고 흙으로 돌려보내 주는 거룩한 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지렁이 집으로 가서 먹이를 주려고 화분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때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렁이들이 화분 흙 위로 올라와서 놀다가 제가 화분으로 다가가자 쏙쏙 흙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햇살을 피해 숨는 붉은색 지렁이들이 참 귀여웠습니다. 지렁이 색이 이때만큼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한 생각이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쏘옥 올라왔습니다.

 

‘저렇게 땅속에서, 흙에 묻혀서 사는 지렁이들도 다 자기 색이 있구나. 그렇지. 하느님이 ’빛이 생겨라.‘ 하신 뒤에 창조된 모든 것은 모두 색이 있는 거지. 아무리 깊고 깊은 땅속 세계일지라도, 그분이 있게 하신 빛이 안 닿는 곳이 없지. 그 빛이 있어서 저렇게 지렁이는 지렁이 색을 갖고, 두더지는 두더지의 색을, 수많은 벌레는 다 자기네 색을 갖고 사는 거지. 아, 그래, 지렁이는 빛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빛을 좋아하는 거구나.’

 

빛을 통해서 전달되는 하느님의 따뜻하고 섬세하신 마음을 생각하면서, 모든 생물에게 고유한 색을 입혀 주셔서 ‘제 종류대로’ 아름답게 하시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색을 띠고 살고 존재하면서 자기식으로 에너지를 나누어줍니다. 지렁이의 색을 통하여 온 세상 만물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만납니다! 지렁이들을 통해서 이 깊은 돌보심과 사랑의 신비를 일깨워 주시는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새롭게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다음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모습을 어느 모로 반영하며 우리를 가르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221항) 하느님이 당신의 빛으로 우리를 살게 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과 축복을 가득 채워 주시는 것을 일깨워 준 저 ‘색 있는’ 지렁이들과 하느님의 거룩한 창조물들에게 감사와 경탄을 보냅니다.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빛〉잡지 독자 여러분 모두 하느님의 빛의 영성 안에서 그분의 빛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분의 빛이요 그분의 아들딸답게 사는 신앙살이를 더욱더 충만하게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시고” 또 주실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245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