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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우리의 존재를 파고드는 기후 변화
- ‘천진(天震)’ 앞에서: 생태 실천을 통한 우리의 존엄 회복을 그리며


글 황종열 레오|평신도 생태영성학자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일본 등은 불의 고리 지대라고 하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합니다. 로스앤젤레스와 도쿄를 비롯해 많은 도시들이 산과 강과 들과 어우러진 형태로 개발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면, 도시의 지반에 변형이 생기면서 도시가 파괴되고 지역민들은 재앙을 겪게 됩니다. 만약 지진이 하늘에서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2021년 단 하나의 “공동의 집” 지구 공동체는 곳곳에서 폭염으로 재앙을 겪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온 국민이 세계 시민들과 함께 폭염을 겪었고 올해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유엔이 기후 변화를 과학적으로 밝혀서 인류 공동체가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요, 2021년 8월과 올해 2월에 제1실무그룹과 제2실무그룹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1차 보고서를 위해 세계 기후 전문가 234명이, 2차 보고서를 위해서는 278명의 전문가가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은 1차 보고서에서 산업화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지구 평균온도가 1.09°C 상승한 것으로 발표하였습니다. 2차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발생시키고 있는 기후 변화가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서 멸종과 가뭄과 산불 현상 등이 심하게 나타났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식으로 기온이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가는 것을 위에서 시사한 것처럼 대기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진(地震)’ 에 대비시켜 ‘천진(天震)’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늘이 요동하여 세상이 뒤흔들리는 사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든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지진이 한 지역의 도시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넓고 더 크고 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와 온 동식물이, 그리고 온 땅과 물과 바다와 대기가 영향을 받아서 우리의 삶이 급격하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도시는 지반을 고려하여 건설하지 않으면 그만큼 위험해집니다. 하지만 지반은 도시를 고려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명은 기후를 고려하고 기후에 적응한 형태로 세워지지만 기온은 사람과 문명을 고려하여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생태적 지반 변화’의 심각성과 위기의 규모와 본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여러 부분에서 기후 변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류 사회는 그동안 무분별하고 지각없는 경제 개발을 시도하고 과도하게 부를 축적하면서 “하느님 피조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켜” 왔습니다. 그리하여 “지구의 본래 모습에 손상을 입히고, 자연 삼림과 습지를 파괴하며, 지구의 물, 흙, 공기, 생명을 오염시키”면서 생태적으로 죄를 범해 왔다는 것입니다.(8항) 자신이 이미 기후의 자녀로서 기후이면서도 자신과 기후의 상관성을 망각한 채 기후를, 곧 자기를 이렇게 교란시켜 온 것입니다.

교황님은 이 같은 기후 변화를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로 인식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교황님은 이것이 “세계적 차원”에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데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십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은 온난화와 관련된 현상에 특별한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계는 자연 보호 지역과 농업과 어업과 삼림업과 같은 생태계에 관련된 일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 변화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치명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25항) 교황님은 이런 현실을 보시면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일 것을 호소하십니다.(49항)

기후 변화가 한도를 넘으면 하나뿐인 지구에서 우리가 추구해 온 경제 발전도 개발도 정치도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각종 차별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사회 정의나 종교 대화도, 시장 경제나 자유주의도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 바로잡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위기 앞에서는 어떤 권력도, 성도, 인종도, 연령도, 장애도, 종교도, 문화도, 경제도, 정치 체제도 서로 구분 지으며 갈등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여 더불어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후 변화는 인간 사회의 여러 이념과 가치 추구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하는 한 현상이 아니라 자신과 인류 사회와 지구 전체의 관계를 파국적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결정적인 지반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땅을 딛고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물과 공기를 마시면서 하느님의 하나의 빛 안에서 함께 이어져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태적 지반 변화”를 파국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는 개발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이 바라시는 생명 살림(oikos of life)을 위하여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활을 할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지반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이것을 자신의 사목과 신앙 실천에 통합할 줄 아는 개인과 가정, 단체, 본당과 교구가 택하는 복음화와 삶의 방향은 그렇지 못한 이들의 그것과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기후 변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 공동체로 하여금 지금까지 도달한 인간 지성과 인류 문명을 기초로 지구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식별하여 실천할 것을 요청하시는 “때의 표지”와도 같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의 자연에 폭력적인 형태로 개발하며 살아온 결과로 우리가 초래한 기후 변화의 파국적인 영향을 안다면 돌아설 선한 사람들이 있고, 알고도 부와 권력을 위해 파괴를 계속해 갈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신앙인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이것은 저에게 역시 끊임없는 과제임을 고백하면서 스스로 묻게 됩니다. 우리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후 변화를 극복할 길을 마련하고 함께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교황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천할 응답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태적 화해를 위해서 선택하는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이라고요. 우리 자신이 기후로서 우리의 이런 행동은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관대하고 품위 있는 창의력에 속하는 것”이고, “우리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것이라고요.(211항) “이러한 노력은 때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러한 행동의 실천으로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요.(212항) 생태적 회심이 통합된 인격적 회심을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그리며 인사드립니다. 샬롬, 우리 주님의 통합적 살림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