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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사단법인 릴리회 명예회장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 김선자 수산나 기자|사진 박지현 프란체스카 기자

평생 한센인들을 위해 살아 온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가 지난 5월 20일 제15회 세계인의 날에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고령과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엠마 여사를 대신해 주한 오스트리아 볼프강 앙거홀처 대사가 대리 수상했다. 이에 지난 6월 27일 엠마 여사가 머물고 있는 틋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가 운영하는 요양시설 파티마홈에서 교구총대리 장신호(요한보스코) 보좌 주교와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늦은 전달식이 열렸다. 엠마 여사는 “상을 받기가 부끄럽다.”며 “제 옆에서 늘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고 그분들은 내게 한번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고, 여자로서 힘든 일이었지만 이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고 일 할 수 있게 도와 준 분들과 함께해서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1961년 엠마 여사가 대구 땅을 밟은 것은 제7대 대구대교구장 서정길(요한) 대주교가 오스트리아 출신 루디 신부에게 구라(救療, 한센인 구제)사업을 맡기면서였다.

대구에 도착한 후 한센인을 돌보며 생활한 엠마 여사는 1962년 한센병 환자를 위한 전문병원을 건립하기로 결심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오스트리아 부인회 등의 도움을 받아 가톨릭피부과의원을 세웠다. 이후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고 이들 중에는 한센병으로 진단 된 환자가 많았다. 엠마 여사는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신 일”이라고 말했다.

2년만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온 29세의 젊은 여성은 어느덧 61년을 이곳에 살며 90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엠마 여사는 “4개월 동안 한국말을 배우고 어떤 동네에 갔는데 그곳에서 한센인들의 삶을 보니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며 “그때 주님께서 내게 그들과 평생 함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엠마 여사는 “그날 주님께 한 약속을 지킨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엠마 여사가 평생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스트리아부인회의 지원과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7년 결성된 오스트리아부인회는 엠마 여사를 돕기 위해 많은 지원금을 보냈고 1958년 해외 구호사업지로 한국을 택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군의 신탁통치 끝에 1955년 주권을 회복해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때였다. 엠마 여사는 “오스트리아부인회는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보내줬다.”며 “한센인들은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엠마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릴리회’는 1970년 '한센 환자도 내 형제, 내 손으로 돕자.’며 부산지점 한국은행 故 김광자 행원을 중심으로 여성 은행원들이 뭉쳐 시작됐다. 이후 한국은행 전국 지부와 독지가들까지 가세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어느 한 사제의 소개로 엠마 여사와 연결이 되어 현재의 릴리회가 됐다. 릴리회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한센인 치료와 재활, 자녀 장학사업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대구 북구 태전동 사무실을 중심으로 해외까지 확대되어 운영되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버려진 한센인들을 보듬어 안으며 친구와 가족이 되어 준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는 평생을 헌신과 봉사로 살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그동안 크고 작은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알아 주는 것이 부끄럽다고 거듭 밝힌 엠마 여사는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이 일을 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상을 받았다.”며 “함께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평생 한센인들과 살며 희노애락을 겪은 엠마 여사의 얼굴에는 미소만이 가득하다. 엠마 여사는 “나의 길을 찾았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며 “아직까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운데 그에 비해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그래서 행복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소회했다. 마지막으로 엠마 여사는 “주님의 말씀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삶”이라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