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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하다
못하겠는데요.…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 | 수성성당 보좌

살다 살다 성형수술을 할 줄은 몰랐다. 얼굴에 생겼던 종기가 곪아버려 모난 얼굴이 더 모나게 되었다. 모나고 종기로 땡땡해진 내 얼굴을 보니 괜스레 속상했다. 괜찮겠거니 하고 내버려 둔 게 6년이다. 그 시간 동안 커지고 작아지면서 괜찮게 버텨왔다.

 

더이상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의 수술 영상을 보니 예삿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폭포처럼 솟아날 고름과 그 고름의 악취를 상상하니 괜히 병원에 갔다 싶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그냥 불의의 사고로, 혹은 적극적인 나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은 사고로, 가령 세수를 하다가 손톱에 긁혀서 종기가 터지는 사고로 인해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길 바랐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지고 부어 있는 종기와 아슬아슬하게 일곱 낮과 밤을 같이 보냈다. 일곱 낮과 밤은 설명의 연속이었다. 똑똑해서 종기가 생긴 것이라 능글맞은 농담으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얼굴이 왜 그래?” 라는 질문은 쏟아졌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해서 인적사항을 체크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친절한 수술실 간호사들의 안내를 받아 휠체어를 탔다. 구레나룻 옆에 난 종기를 없애는 수술 아닌 시술을 받는데 휠체어는 너무 과한 거 같아 부끄러웠다.

 

내 몸보다 좁은 수술대 위에 누워서 이곳저곳에 마취 주사를 맞았다. 종기 부분을 절개하고 곳곳에 숨겨진 고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미처 마취가 되지 못한 곳에 통증을 느꼈다. 통증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보다 내 몸에 더 섬세했던 의료진이 내 표정을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했다.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던 통증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코를 골며 얕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깼다. 간만에 깊게 잠든 기분이었다. 오로지 내 몸과 마음을 위한 잠은 간만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개운한 잠이었다.

 

개운하게 자고나니 이렇게까지 될 일은 아니었음을 느꼈다. 좀 더 내 몸과 마음을 돌봤으면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었을 테고, 진작 병원에 다녀왔으면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미루지 않았으면, 그렇게까지 중요하고 바쁜 일이 아니라고 받아들였다면 가벼이 지나갈 일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해야 할 일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순리를 잊고 살아가곤 한다.

 

“혹시 시간되시나요?”, “잠시 면담 좀….”이라는 연락이 두려워진다. 내가 할 수 없지만 그런 연락 뒤에는 항상 일이 만들어지고 해결을 하려고 한다. ‘좀 못하면 어때.’가 용납이 안 된다. ‘나는 내향적이라서 어쩔 수 없어.’라고 그다지 신뢰 하지 않는 혈액형이나 성격유형검사로 앞뒤 생각하지 않는 나의 선택을 애써 포장한다. 그러면서 적당한 긴장감은 일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되뇌이며 긴장을 더할 뿐이다.

 

온몸에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오늘도 나는 잠에서 깬다. 여느 때처럼 식은땀을 손으로 훔친다. 손에 맺힌 식은땀은 이내 마르고 사라진다. 식은땀이 마른 손을 본다. 이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건 아니에요.”, “제가 못 할 일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식은땀을 흘릴 일은 사라지리라.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오늘도 나는 말하지 못해 만들어진 내 몸을, 그리고 내 잠을 갉아 먹게 할 일로 가득한 일정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가득한 일정을 꾸역꾸역 해놓고 방으로 돌아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대에 눕는다. 내일은 부디 식은땀 없는 아침을 꿈꾼다.

 

그렇지만 분명 내일 아침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깰 것이다. 좀 더 상쾌하게 아침을 만나고 싶다. 내일 아침에도 축축해질 잠옷을 입으며 해야 될 일에 좀 더 애쓰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그것보다 ‘용기를 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