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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마리아 누나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 | 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벌써 9월이네요. 9월은 뭔가 모르게 다시 시작되는 느낌을 줍니다. 날씨도 뜨거움에서 선선함으로 넘어가고, 삶의 리듬도 휴가에서 일상으로 넘어갑니다. 저도 8월 휴가를 보내고 다시 이곳으로 왔습니다. 어머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죠. 휴가 갈 때는 억수로(너무너무) 좋았는데 돌아올 때는 참 오기 싫었습니다. 선교사라고 하니까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라는 말과 함께 반짝이는 눈빛을 상상하시겠지만 떠나올 때는 정말 오기 싫은 마음이에요. ‘집’이 주는 편안함이 있거든요. 그래도 다시 선교지에 도착하면 오기 싫었던 마음은 신기하게도 사라지고 ‘그래, 또 살아보자.’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달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지요? 제 누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곳 현지에 제 누나가 있거든요.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누나는 제가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입국하기 한 달 전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6년하고 3개월을 살고 있으니 마리아 누나는 6년하고 4개월인거죠. 이곳에서 제가 새롭게 태어났다고 하면 마리아는 저보다 1개월 앞서니 당연히 누나가 되는 거죠.

마리아 누나의 엄마는 ‘류다’, 아버지는 ‘제냐’입니다. 류다는 이곳 교구청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주방 자매님, 식관 자매님이라는 호칭으로 성당 사제관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호세 루이스 주교님께서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오셨을 때 ‘심켄트’라는 도시에 머무르셨는데 그곳에서 류다를 만났습니다.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리아 누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이곳 교구청 제 방이 있는 2층 공간에서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이 제방, 오른쪽이 엄마 류다가 마리아 누나와 출근해서 하루 동안 지내는 방입니다. 지금이야 학교를 다녀서 하루 종일 집에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키운 건 엄마, 아빠만이 아니라 주교님과 저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만 보면 참 아름다운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온 가족 전체가 키우는 거라고... 그런데 제가 왜 마리아 누나에 대해 집 사진까지 보여주며 소개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누나를 만나기 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소연이겠죠, 하소연!

뭐냐면? 아이와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곳이 아니었다면 갓난아기와 함께 하루종일, 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 ‘동거’가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주일에만 아이들을 보니까 좋은 마음으로만 봅니다. 그리고 집에 함께 사는 것도 아니니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고요. 엄마들이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래도 함께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참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 “이제 좀 살겠다.”, “이 육아는 언제 끝날까.”라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의 말이 100%는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사제생활 때보다는 더 와닿습니다. 좀 더 이해되는 마음입니다. ‘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 주교님이 할아버지라면 저는 삼촌이 되겠지요. 마리아 누나가 놀자고 달려오면 ‘좀 피곤한데’ 하면서 도망칠 궁리를 할 때쯤 저의 구세주 주교님께서 마리아 누나랑 놀아줍니다. 그럴 때 저는 혼자 중얼거리죠. “아이를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 일이 아니야.”

엄마 류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마리아 누나와 함께 문밖을 나서면 주교님과 저는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 다시금 하느님께 감사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참 별걸 다 느끼지요?

선교지에서 온 편지인데 보통 생각하시는 것과 자꾸 다른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네요. 이렇게 소소한 것에서 깨닫는 즐거움을 전해드리는게 저는 참 기쁜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좋은데 이렇게 마음속에 무엇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도 괜찮지 않나요?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요. 하하하!

다음달에 또 뵐게요. 건강 잘 챙기며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