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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한국 카리타스’의 탄생을 목전(目前)에 두고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교구 사회복지국 차장

 

작년부터 우리 교구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 가톨릭 사회복지계의 큰 프로젝트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전국 교구와 수도회의 카리타스를 하나로 모으는 사단법인 한국 카리타스(가칭)의 설립입니다. ‘아니, 한국 카리타스는 원래 있던 단체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한국 카리타스 인터내셔널1)(이하 인터내셔널)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내셔널은 말 그대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해외원조 활동에 국한된 일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엄밀히 국내 가톨릭 사회복지계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내셔널 설립 당시에도 앞으로 국내 가톨릭 사회복지계가 ‘한국 카리타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이게 될 때를 대비해 조직 이름에 별도로 ‘인터내셔널’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한국 카리타스라는 단체가 설립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국내 가톨릭 사회복지는 가톨릭교회의 구조적인 특성상 교구와 각 수도회 법인별로 움직였기 때문에 별도로 존재해야 할 이유나 명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대표 기구로서 한국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비상근(非常勤) 총무 신부 한 명과 다른 여러 위원회를 함께 담당하는 직원 한 명이 전부였으니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조차도 폭넓은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관련 법령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바뀌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각 교구나 수도회가 일일이 대응해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국가에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일들을 가톨릭교회가 먼저 나서서 귀감과 희망이 되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복음적인 방법으로 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이 만들어 가는 기준에 따라가기 바쁜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서로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더이상 바랄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기준이 우리가 믿고 가르치고 살아가는 것과 다르거나 반대되는 것들이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이웃 사랑을 통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는 우리에게 만약 하느님(종교색)을 빼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애만 남는 휴머니즘적 사랑 실천에 불과한 것이고 더이상 카리타스는 카리타스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최근의 흐름 속에서 더이상 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으로, 한국 가톨릭 사회복지계의 구심점이 될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 카리타스’(가칭)의 설립 준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카리타스 정체성을 지켜내고 세상에 복음적인 해답을 제시하고자 각 교구 사회복지 대표들이 모여 전국 교구 주교님들께 사단법인 설립을 청원했고, 작년 추계 주교회의에서 설립 허가 인준까지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면 한국 카리타스를 통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한국 카리타스는 대정부 및 대사회와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로 대표되는 정부의 복지관련 부처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같은 종교계 단체보다는 각종 협회와 협의회 등 법적 요건을 갖춘 대표성 있는 단체만을 주된 소통 파트너로 삼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카리타스는 함께 연대하여 정책상의 문제 제기 뿐만 아니라 법적 대안 제시까지 해 나갈 것입니다. 둘째,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가톨릭 사회복지의 구심점 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각 교구나 수도회 법인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가톨릭사회복지라는 구심점을 통해 최소한의 공동 영역과 방향성을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 나갈 것입니다. 셋째, 대외적으로는 가톨릭 사회복지의 선한 영향력과 존중을 회복해 나갈 것이며, 내적으로는 카리타스라는 공동의 정체성 안에서 각 시설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역량과 실천을 강화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대구 카리타스는 올 한 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든 형제들」 회칙에서 영감을 얻은 ‘다리놓는 사람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교회와의 연대, 이웃과의 연대, 세상과의 연대, 동료와의 연대 네 가지를 실천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한국 카리타스의 설립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있는 프로젝트로, 급변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가톨릭교회가 새롭게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있어 중요한 과업이 될 것입니다.

 

1)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해외원조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