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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칸타타,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으로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으로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통신 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외국살이를 시작했던 1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하게 한국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독일의 물리적 거리를 체감하게 될 때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아프거나 제가 아플 때입니다.

며칠 전 급작스런 복통으로 응급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큰 수술도 아니었고, 웬만한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새벽 한 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만이 오가는 병원 수술대 위에 누워 있으니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조금 더 빨리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해 일주일 동안 괜한 고생을 했다는 원망, 흉터에 대한 걱정, 혹시나 깨어나지 못할까 하는 조금의 불안함. 온갖 잡생각에 언짢은 초조함이 느껴질 즈음 마취가 시작되었고, 일어나 보니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같은 방을 쓰던 할머니는 아주 작은 볼륨으로 하루종일 라디오를 듣고 계셨는데, 너무 작은 볼륨으로 듣던 터라, 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라디오를 켜놓고 있다는 걸 잊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몸이 조금 회복되어서인지,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귀에 익숙한 선율이 들려옵니다.

 

“내 마음은 주님이 지어내신 작은 그릇”

 

분명 “Jes us bleibet meine Freude”라고 독일어로 부르고 있는데, 제 귀에는 한국어 가사로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톨릭 성가 180번 〈주님의 작은 그릇〉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147번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으로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에 사용된 성가 선율입니다. 우리에게는〈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다양한 기악곡으로 연주되며 사랑받는 곡입니다.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 등에서 직접 연주를 많이 한 곡이기도 했는데, 막상 독일어 가사는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구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습니다.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내 마음의 위안과 활력이시네.

예수는 모든 고난을 막아주시니

내 삶의 힘이 되고 내 눈의 기쁨이고 태양이며

내 영혼의 보배이고 환희이시네.

그러므로 나는 예수를 마음과 얼굴에서 놓지 않으리”

 

“나에게 예수님이 계시니, 행복하여라.

오 내가 그를 단단히 붙들고 있으니,

아프고 슬플 때면 그가 내 마음에 활력을 주시네.

나에게 예수님이 계시니,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찢어진다 해도

나는 예수님을 놓지 않으리”

- 이기숙. 「교회 칸타타」, 마티, 2021, p709

 

외워서도 연주할 만큼 익숙한 선율이 새삼 새롭게 들리고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과장되지 않고 성실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바흐를 똑 닮아 있는 듯합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바흐지만 그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고, 자식이 스무 명 있었는데 그중 열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신앙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바흐는 교회 칸타타나 종교 음악을 작곡하고, 마지막에는 항상 “Soli Deo Gloria, S.D.G.”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뜻으로, 모든 음악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데 쓰여지길 바라는 바흐의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건강도, 재능도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축복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병원 생활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흐 칸타타 147번 제목처럼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