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카리타스 사람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글 남정숙 요안나|성요셉요양원 조리사

내게 10주년 기념으로 교구 〈빛〉 잡지에 기고할 글을 써 보라고 하신다. 10년, 말로 할 것도 별로 없고 글로 쓸거리는 더더욱 없는데 시간은 흐르고 흰 노트는 채워지지 않고 연필만 까딱까딱하고 있다. 10년은 지금 변화로 보면 강산이 한번 아닌 몇 번이 변한 시간일 수도 있다.

나의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변해가는 동안 함께 걸어온 성요셉 친구들(이용인), 고된 주방일에 지쳐 있을 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용인 95명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따라 웃게 된다.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아델라가 밥상 앞에서만은 늘 해맑은 미소를 보여줄 때 나는 하느님이 보내시는 미소라 느낀다.

매일 새벽, 아침이면 밥을 하려고 출근한다. 새벽 출근 때에는 꼭 하늘을 본다. 아직도 고령은 별을 볼 수 있어 늘 별이 떴는지 안 떴는지 확인하게 된다. 아는 별이라곤 북두칠성밖에 없지만 그래도 별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다. 하루 종일 주방 일에 힘들어 피곤하면 고개 들어 하늘 한번 바라보기 힘들지만 지는 새벽 별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매일 소박한 기도를 바친다.

오전 7시 20분쯤 되면 독립방 친구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온다. 하룻밤 사이에 보고 싶었단다.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O임 씨와 O숙 씨, 잘 잤냐고 물어주는 O영 씨와 O복 씨, 말없이 빙그레 미소 짓는 O훈 씨, 목청 높여 얘기하는 O진 씨, 내겐 모두 소중한 자식 같은 이용인이다. 나는 성요셉요양원에서 식사를 담당하는 조리사이다.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힘든 우리 장애인 분들, 그분들이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나의 일이요 소명이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 좋게 갈거나 다져서 온반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더 중증인 요양원 친구들을 위한 다짐식은 손목이 아프도록 잘게 칼질을 해야 한다. 조그만 덩어리도 삼키기 어려운 친구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칼질하면서도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가야 하는데….’하며 ‘더 잘게, 더욱더 잘게.’ 하자고 되뇐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채를 썰어 나가면 되는 수준의 섭식 상태였는데 지금은 친구들도 나이가 들어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더 어려워지고 있어 어느새 반찬은 다짐식이 되었고, 인원도 많아지고 있다. 그 또한 마음이 아프다. 살다 보니 점점 아픈 것이 많아진다.

그렇게 잘게 해도 생활실에 올라가면 생활재활선생님들이 가위 장인처럼 부족한 것들을 가위질한다. 친구들을 묵묵히 챙기는 생활재활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넙죽넙죽 나이만 먹었지 부족한게 너무 많다.

갓 졸업하고 입사해 처음엔 돈 벌려고 일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에서 사랑으로 변하는 생활재활선생님들의 모습은 우리집의 훌륭한 전통인 것 같다. 사정이 생겨 퇴사하면서도 제일 힘든 게 친구들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선생님들! 친구들한테 순식간에 머리채가 뜯기고, 뺨에선 번갯불이 번쩍이고, 이동을 도와주던 어린 선생님들 가슴에 남은 흉터! 그래도 머리채를 놔줄 때까지 기다려 주고, 맞아서 뺨이 벌겋게 되도 웃고, 놀라서 괜찮냐고 물어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선생님들이다. 이곳은 결코 돈 만으론 있기 힘든 곳이다. 그런 선생님들께 따뜻한 밥을 해줄 수 있어 기쁘다. 나는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선생님들이 식사하러 오지 않으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우리 성요셉재활원과 요양원은 신부님부터 직원들까지 모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느님의 선한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이래서 ‘복덩이구나.’ 싶다가도 ‘복덩이들 덕분에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바르게 살게 도와주는구나.’ 싶다.

요즘 살이 찌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건강을 위해 고기보단 채소를 조금 더 먹어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 친구들이 나이도 많아지고 활동이 힘든데다 고기를 많이 좋아해 살이 찌다 보니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이 늘어나 걱정이다. 평생 장애를 불평 하나 없이 지고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도 늘 부족함에 허덕이고 청원 기도만 하는 부족한 내 모습을 예수님께 내려놓는다. 고되긴 하나 기쁘게 살 수 있게 해 준 우리 복덩이 친구들과 신부님,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 더불어 모든 것이 우리 영양사 선생님과 동료 조리사 선생님들 덕분임을 말해주고 싶다. 내일 아침 소고기국에는 사랑 한줌을 더 담아 정성껏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