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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타스 사람들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


글 권태완 아론|천사들의 집 생활재활교사

 

겨울이 지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4월, ‘천사들의 집’ 이라는 곳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천사들의 집 마당에 도착하니 몇몇 거주인이 창문을 열고 내다보며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아 주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이전 근무지처럼 성인 발달장애인 분들과 함께 지내게 됐지만 그동안은 주간보호센터 업무였고 거주시설 근무는 처음이어서 신입 때처럼 긴장이 되었습니다.

아침 회의 시간에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생활관에 올라가 거주인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어 긴장이 풀렸습니다.

인수인계 후 앞으로 함께할 철수·영수·명수(가명) 씨를 만난 날이 생생합니다. 철수 씨와 영수 씨가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인사하던 것과 달리 명수 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했지만 동료 직원이 평소에도 말수가 없는 분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관 근무에 적응하며, 거주인 분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서비스가 이루어졌습니다. 철수 씨, 영수 씨는 “트로트 좋아요.”, “야구장 가고 싶어요.” 등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명수 씨는 말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고, 행사 때도 다른 거주인 분들과 달리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분이 마음을 열고 프로그램과 개별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년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업무분담으로 프로그램 담당자가 됐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생활관에 가서 명수 씨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명수 씨가 태블릿 피시로 ‘파워레인저-매직포스’ 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적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파워레인저 시리즈를 좋아해 명수 씨에게 파워레인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명수 씨가 활기차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본 명수 씨의 모습이었습니다. 파워레인저를 통해 명수 씨와 점점 가까워졌고, 명수 씨가 파워레인저 외에도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명수 씨라면 절대 본인의 태블릿 피시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저에게 보여주며 함께 나들이나 캠프 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 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자기권리주장대회 등 행사 때도 스스로 마이크를 잡거나 다른 거주인 분들과 함께 행사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2022년 6월, 제35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포스터를 발견한 저는 명수 씨가 생각났고, 참여의사를 물었습니다. 명수 씨가 바로 “OK!”라고 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준비해 대회에 참가했고, 명수 씨가 낸 작품이 사진 부문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인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상식은 10월에 열렸고, 명수 씨와 함께 서울에 가게 되었습니다. 명수 씨가 먼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너무 좋아.”라고 말한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루카 복음 11장 9-10절의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도 이 성경 구절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과 노력으로 마음을 열지 않았던 명수 씨도 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덧 ‘천사들의 집’에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집’ 거주인 분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