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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미안함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지난 성소주일에 신학교는 모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며 행사 프로그램을 둘러보는데, 학생 수녀님들이 준비한 ‘지구야 할 말이 있어!’라는 게시판이 눈에 띄더군요. 아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궁금해서 살펴보니 ‘미안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지구가 병이 난 것은 어른들 책임이지 아이들이 미안해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삐뚤삐뚤한 글씨로 ‘지구야 미안해!’라고 적은 메모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에게도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수록 ‘미안하다’라는 말을 적게 하는 것 같습니다. ‘미안해’라는 한마디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일에도 먼저 그 말을 꺼내지 못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내적 여유가 있음을 뜻한다.’고 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저 자신은 ‘미안’이라는 말에 인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미안함이 부끄러워해야 할 감정은 아닌데 말이지요.

아이들처럼 아픈 지구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과 연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미안’이라는 말은 단순히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지요. ‘미안(未安)’은 한자가 드러내는 것처럼 ‘편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느낌이 바로 ‘미안함’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그냥 지나치거나 후원해 달라는 복지 단체의 요청을 거절할 때 왠지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마음이 결국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미안함은 우리네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어려움에 그만큼 ‘공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선한 마음이 새롭게 솟아올라 우리네 마음도 더욱 순해집니다. 또한 미안해하는 것은 어떤 문제에 나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강할수록 그 일에 대해 ‘잊지 않겠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미안함은 너와 나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태영성도 미안한 마음을 바탕으로 자라납니다. 어른들처럼 ‘기후변화가 문제’라고만 하지 않고, 아이들처럼 ‘지구야 미안해!’하며 함께 아파하는 모습 속에서 생태영성살이도 깊어집니다. 오늘날 생태 담론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은데, 우리에게 진정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먼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처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이 멸종되어 가고 기후변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는 현실은 단순히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비극’입니다.

생태 위기의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러한 아픈 현실을 ‘잊지 않기 위한’ 미안함이 필요합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다른 피조물들에게,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면서도 기후변화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문제를 떠안게 되는 어린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 할수록 우리는 그들에게 ‘덜 미안한 삶의 방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지구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누가 더’ 미안해야 하는지 따지거나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미안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교적 생태영성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망설이지 않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언젠가 다시 ‘지구야 할 말이 있어!’ 게시판을 보게 된다면 그땐 저도 아이들의 메모 옆에 이렇게 적어보고 싶습니다. “나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