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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친구’라는 말은 참 따스한 느낌을 줍니다. 친구가 있기에 세상이 좀 더 살맛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지만 막상 힘든 일을 겪거나 외롭고 허전할 때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지요. 휴대폰의 연락처에 수많은 사람의 전화번호가 있지만 언제든 마음 편하게 연락할 친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시인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고등학생 때 라디오에서 자주 읽어 주던 글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해 우리의 삶은 과거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화려해졌지만, 현대인은 더 고독하고 우울합니다. 인간관계는 훨씬 복잡해졌지만 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드뭅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이 글은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의 학창 시절, 우리에게 친구와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 책이었습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난초같이 향기로운 친구 간의 사귐을 뜻하는 말로 『명심보감』에서 공자가 이야기한 표현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착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있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곧 그 향기와 동화된다. 반면에 착하지 않은 사람과 지내는 것은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비린내를 맡을 수 없지만 몸에 그 냄새가 배어 버린다.”1)

 

신학원에서 『명심보감』 강의를 하다가 ‘교우편(交友篇)’ 부분을 함께 읽으며 옛날 성현들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수두룩하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2)

 

“술이나 음식을 함께할 때 형제 같은 사람은 천여 명이나 있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친구는 한 명도 없다.”3)

 

이런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내 주위에는 왜 이런 좋은 친구가 없을까?’ ‘지금 내 친구는 난초 향을 풍기는 사람일까,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사람일까?’ 그럴 때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주변 사람에게 어떤 친구일까? 지란지교 같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친구인가, 아니면 악취를 풍기는 사람인가?’ 내 친구가 어떻다고 판단하기 보다 내가 먼저 멋진 친구가 되어 준다면 지란지교와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밤, 친구와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제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집회 6,8)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1)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1장.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與不善人居, 如入飽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2) 같은 책, 4장.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3) 같은 책, 5장. “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