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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 하다
갑작스러운 일들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영천성당 보좌

스스로 지극히 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과 시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차 좀 태워주시소. 나는 우리 신부님 차 타고 갈란다.”

 

너무나 진솔하고 당연한 우리 공소 할머니들의 부탁은 지극히 사적인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내게 기분 좋은 낯섦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들은 며칠 전 먹다가 버린 커피컵과 온갖 물품이 뒤섞인 뒷자리에 스스럼없이 타셨지만 조수석에는 앉지 않으셨다. 그나마 앉을 만한 곳이 조수석인데 할머니들은 한사코 조수석을 마다하셨다. 뒷자리에 앉으신 할머니들께 내심 미안했다.

 

뒷자리에 앉으신 할머니들은 차에 있는 인형들을 쓰다듬으시면서 ‘참 참하다.’, ‘곱다.’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비우가 좋아집니다. 어데 신부님한테 차를 태워달라고 하겠습니까?”

 

비우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고 부탁이 필요한 만큼 할머니들은 공소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살고 계셨다. 이 먼길을 드문드문 있는 버스나 공소회장님과 신자들의 차로 다니셨다고 한다.

 

마을에 도착해 마을회관 앞에 할머니들을 내려 드렸다. 할머니들은 “참 좋다.” 하시며 내리시곤 내가 길을 잃고 헤맬까봐 걱정하셨다. 그 걱정에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그런 일은 없다고 안심시켜 드리며, 다음주에 뵙자는 인사와 함께 언제든 부탁하시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들은 떠나가는 나를 향해 한참 동안 손을 흔드셨다.

 

내 공간과 시간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늘 경계하면서 살아왔다. 갑작스러운 약속과 예상치 못한 만남은 나에겐 참 피곤한 일이었다.

 

좋은 기억들, 간직하고 곱씹어 봤었던 일들은 예상되는 가운데 벌어지지 않았다. 예외와 변수로 인해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계획과 예상된 약속과 만남은 약속과 만남으로 남을 뿐 어떠한 기억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약속, 그리고 부탁이 내 공간과 시간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는 내가 애써 지키려 했던 평정심이 객기였음을 순순히 인정하게 했다.

 

새롭게 만들어질 수많은 기억과 이야기가 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기분 좋은 피곤함에 마음을 조금 더 내려놓고 싶은 솔직하면서도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목을 살짝 빼고 몰래몰래 훔쳐보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천천히 내려놓을까 싶기도 하다. 기분 좋은 피곤함에 지치지 않고, 더 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만들어 가기 위해 천천히 오랫동안 내려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