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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해양사목(海員牧靈 : 하이위엔무링)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타이완과 같은 섬나라는 바다와 뗄 수 없는 환경 안에 있으며, 특히 배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선원(船員)이라고 하며 중국어로는 하이위엔(海員)이라고 합니다. 선원의 삶은 늘 고독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한번 배를 타면 수개월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거대한 바다 위의 삶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선원들을 위해 교회는 해양사목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해양사목은 1920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타이중교구는 수야오원(蘇繼文) 주교님의 지원으로 국제운송연맹(國際運輸聯盟), 국제사회복지회(國際社會福利會) 등의 협조를 구해 2011년 1월 타이중항에 해성해원서비스센터(海星海員服務中心)를 설립해 선원들을 위한 사목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 6일, 화물선 한 척이 줘수이시(獨水漢)라는 바다에 좌초되어 선원들이 고립됐을 때 선주(船主)가 이들을 구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선원들은 일을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임금도 받지 못하고 배에 갇혀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선원들의 고립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저는 해양사목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교구청 직원의 요청으로 그 현장에 방문하게 되었고 배가 있는 곳에 가기 위해 약 한 시간 동안 갯벌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펄을 밟으면 밟을수록 발은 점점 개흙과 엉겨 붙어 쉽게 뗄 수가 없었습니다. 높은 선체를 타고 올라가 선원들의 주거 공간과 주변 환경 등을 보니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6명의 선원은 타이중교구의 협조로 이듬해 11월 13일 육지를 밟을 수 있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고립된 현장을 방문한 후 해양사목과 관련된 활동에 자주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특히 타이중항에서 선원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있는 본당은 자동차로 15분만 이동하면 타이중항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바다와 근접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기회는 어쩌면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저와 본당 교우들에게는 참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본당 교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었고, 교우들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신앙생활의 유익함을 더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 작년에 본당 교우뿐만 아니라 타본당 교우들과 함께 해양사목 활동에 참여한 일입니다. 평소에는 교구에서 준비한 생필품만 전달했지만, 이날은 본당 신자 몇 분의 자발적인 찬조가 있었고 타본당에서는 이발봉사를 더 했습니다. 이날 활동이 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많은 교우가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물적 지원을 받는 선원들의 밝은 모습도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유독 많은 선원들이 찾아온 이날, 준비한 물건이 소진되어 가는데도 선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한두 가지 정도의 물건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원들은 불만을 드러내기 보다 밝은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러한 선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조국과 가족을 떠나 살면서도 기꺼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해양사목을 체험한 저로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된 삶의 모습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듯이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사 중에 작은 성체 한 조각을 영할 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각자의 부족한 삶의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