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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 - 성바오로딸수도회 대구분원
함께라면


글 배 영덕막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대구분원

 

“자매는 무슨 라면을 제일 좋아해요?” 양성기 분원체험 중에 한 선배 수녀님의 다정한 질문에 ‘라면을 먹을 수 있나’라는 기대감에 냉큼 “짜파게티요! 저는 짜파게티가 제일 좋아요! 수녀님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해맑은 외침 속에 드러난 양성자의 사심을 읽으신 선배 수녀님은 넉넉한 웃음과 함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함께라면’이요.”

성바오로딸수도회는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통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1915년 6월 15일 설립한 수도회입니다. 현대 기술 문명의 수단을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설립자의 지향에 따라 바오로딸들은 보다 많은 이들을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출판뿐 아니라 영화, 방송,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 수단을 활용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기술 문명이 만들어 낸 다양한 미디어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과 이를 위해 때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전하는 하나의 매체로 교우들 앞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 매번 적잖은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교우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상상만 해도 무릎이 후들거리고 긴장되는 일이지만 본당 요청에 따라 전례 시기별 영상 강론이나 특강, 영상 피정 등을 진행하기도 하고, 도서 보급을 위해 본당을 방문했을 때는 교우들의 영적 삶에 도움이 될 책을 선별해서 소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우들이 전례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율동 찬양을 하거나 시대상에 맞는 의상을 갖추어 입고 복음 내용을 각색한 성극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뒤로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 앞에서 저희는 떨리는 마음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이 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나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고자 하오니 당신께는 영광이 되게 하시고 제게는 천국을 허락하소서.”

- 「바오로 가족 기도서」 겸덕을 구하는 기도 중에서

 

마주 잡은 동료 수녀님의 손끝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이 기도를 마칠 무렵 잠잠해지는 것을 느끼며 쿵쾅대던 저의 마음까지 잠잠해지는 체험이 쌓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함께라면’이라던 선배 수녀님의 마음이 되어가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하는 만큼 삶을 함께 나누는 자매들이 소중해지고, 각양각색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지닌 자매들과 하나의 사명을 위해 선뜻 자기의 것을 내려놓는 순간이 쌓여 가면서 ‘성바오로의 딸들은 공동체 삶과 사도직을 통해 성성(聖性)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하셨던 설립자의 말씀을 체감합니다.

1972년부터 대구대교구와 함께하고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 대구분원은 교구민들의 사랑 어린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지난 2021년 리모델링 후 새로운 모습으로 서적 보급 외에도 다양한 문화 영성 프로그램으로 교우들의 영적 필요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의 사목지침에 따라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과 선교의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성경, 기도, 교회문헌, 영성심리, 글쓰기, 책 읽기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하루 피정, 전례학교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복음화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전후해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작가들을 모시고 영적인 친교의 체험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이를 보다 많은 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지향으로 ‘생명과 친교의 신비’ 초대전을 가졌습니다. 캘리그래피, 보태니컬 아트, 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어우러지는 전시회를 통해 ‘친교의 신비’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저희 바오로딸들은 청춘의 거리, 유흥의 중심지인 동성로에서 거리를 지나는 많은 이들이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께로 새롭게 방향 지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느님과 공동체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 신뢰를 두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시간과 정열과 생명을 바치며’(회헌 12조 참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