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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 하다
그대 손으로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 | 영천성당보좌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나는 손이 진짜 곱다. 그래서 손이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 곱디 고운 손 어디 쓰겠냐?”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이 손을 물려주신 부모님마저도 혀를 내두를 만큼 내 손은 진짜 곱다.

 

모든 사람들의 손이 내 손처럼 고운 줄 알았다. 늘 손이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기 때문에 길고 부드러운 손이 모두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이 예쁘다는 것에 무심했고 다른 사람의 손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관심했었다.

 

성체분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보게 되었다. 관리를 받은 매끈한 손, 삶의 노고가 가득한 주름진 손,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뭉툭하게 닳고 짧아져 버린 손, 뒤틀려진 손에 성체를 전달하면서 수많은 손을 바라봤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마주한 수많은 손에는 흙이 박혀 있었다. 투박하게 닳은 뭉툭한 손톱 밑에 있는 흙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성당 공터에서 주일학교 아이들과 가꿀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많은 신자 분들이 “신부님, 농사는 지어보셨습니까?” 하며 관심을 가져 주셨다. 이런 관심 덕에 텃밭은 잘 가꾸어져 가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텃밭이지만 잡초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틈틈이 잡초를 뽑곤 한다. 잡초를 뽑을 때마다 장갑을 챙길 수 없어 맨손으로 뽑는다. 그런 나에게 “신부님, 맨손으로 하면 손톱에 흙이 끼여서 안 빠집니다.”라는 걱정이 다가왔을 때 투박하게 닳은 뭉툭한 손톱 밑에 흙이 박혀 있었던 수많은 손이 생각났다.

 

다들 고운 손이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부드럽고 말랑한 손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살결은 거칠어지고, 손톱은 뭉툭하게 닳아 버렸다. 흙이 박히는 것을 신경쓰지 못할 만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그 손에 대해 참 무지했음을 느꼈다.

 

투박하고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의 손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던 느낌과 촉감이 참 좋았다. 아버지가 굳은살과 뭉툭한 손끝으로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그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종종 등을 들이밀곤 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주는 그 위로를, 고작 컴퓨터 자판 정도나 만지면서 서툰 위로를 만들어 내는 내 손은 결코 따라가지 못한다.

 

농사가 한창인 요즘 흙이 박힌 손들은 평생을 살아온 그곳에서 또 흙을 만지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그 수고와 고생이 그만큼의 결과로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손이 일구어 온 그 큰 사랑이 인정받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손에 그 따스함이 전해질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