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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침묵의 성모


글 김삼화 아눈시앗따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작년 봄으로 기억한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 수녀님이 잠깐 귀국했을 때 ‘침묵의 성모’ 성화를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책상 위에 두고 오가며 바라보는데, 간혹 험담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 입술에 손을 대고 계신 ‘침묵의 성모’ 성화는 마치 험담하지 말고, 내적으로 침묵하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듯해 마음을 살펴보게 했다.

이 성화를 언제 누가 그렸는지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이탈리아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에밀리아노 안테누치 사제가 ‘침묵의 성모’에 대해 설명한 영상과 ‘신부의 책상: 성물 언박싱 (unboxing)’ 영상을 통해 그 유래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침묵의 성모’ 성화는 십여 년 전 이집트의 그라피토(graffito, 건축할 때 사람들이 남긴 글씨나 그림)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으며 2010년 2월 26일 이탈리아 오르타 줄리오에 거주하는 베네딕도 수녀회에 의뢰하여 9개월 만에 작품으로 완성됐다.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2012년 3월 17일부터이고, 2015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선물로 드리면서 교황이 머무는 사도궁 입구에 걸리게 됐다. 2016년 6월 15일 교황님은 ‘침묵의 성모’ 성화 원본을 축성하시고 뒷면에 아래의 글귀를 적으셨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누군가를 험담할 때 우리는 세상을 더럽히고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하느님 모상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초창기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강조되어 왔다. 특히 문명의 발달이 소음으로 점철되는 현재에 침묵은 더욱 필요한 자세라고 ‘침묵의 성모’는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이 성화는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다. 일반적으로 이콘의 얼굴은 약간 크면서 표정이 없고 경직되어 있는데 ‘침묵의 성모’는 훨씬 더 여성적이다. 그래서 서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화에 황금색은 천상 세계와 신성을 나타내고, 붉은색은 예수님의 피와 수난을, 초록색은 성령을 상징한다. 마리아는 성령의 신부이다. 하늘을 가리키는 성모님의 손가락은 침묵하라고 강하게 명령하는 손짓이 아니라 우리를 천상의 침묵으로 향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우리를 향한 성모님의 관심과 보호를 나타내듯 부드럽게 펼쳐진 다른 한 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멈춰라. 너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니?

하늘은 네 안에 있단다. 너는 내 아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聖地)인 네 마음,

네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성모님의 양어깨에 있는 별과 머리에 있는 별은 영원한 동정성을 상징한다. 이는 예수를 낳기 전에도, 낳았어도, 낳은 후에도 동정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침묵 속에 조용히 기도하라는 성모님의 초대 안에 예수님과 일치해 영성적, 신앙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10월 묵주 기도 성월을 맞아 ‘침묵의 성모’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내면의 성지에 더 깊이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