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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많은 열매를 맺기 바라며②(帝望結出假多果實, 시왕지에추헌둬궈슬)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보면 네 가지 종류의 땅이 나옵니다. 어떤 땅은 길, 어떤 땅은 돌밭, 또 어떤 땅은 가시덤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옥한 땅이 나옵니다. 성경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 땅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를 읽는 분들은 ‘과연 내 마음의 밭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선교를 하다 보니 ‘이곳은 과연 어떤 땅에 속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선교가 순조롭지 않아 실망스럽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 그렇습니다.

선교를 하면서 처음으로 제게 실망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보좌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이웃 본당 수녀님이 본당 신부님께 두 아이의 첫영성체 교리를 요청하신 일입니다. 원래 두 아이의 교리는 수녀님의 소임이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 본당에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신자로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게 했고 이제는 첫영성체를 하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당이 멀어 오가기 힘들고 담당자인 수녀님은 운전을 못하셨습니다. 상황을 들은 본당 신부님은 제가 아이들을 교육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들이 교육받을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저는 주일 미사 참례는 꼭 해야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성당에 오기 힘들 때는 직접 방문해 교리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처음부터 교리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첫 방문 교육 때 집 앞에 이르러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전화를 하며 기다린 지 30분 만에 간신히 연락이 닿아 교리를 시작한 적이 있고, 또 어떤 때는 나들이를 가야 한다며 주일에 교리를 빠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불편한 상황 속에서 약 2개월을 보낸 뒤 저는 아이들의 교리교육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첫영성체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또 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주일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할 만큼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첫영성체를 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고, 이 가정 전체를 교육하기에 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결국 교육을 중단했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이 아이들은 첫 영성체에 이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본당 신부가 된 후네 명의 아이에게 첫영성체 교리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실패가 생길까 걱정했던 저는 매주 밤을 새워 가며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교리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만화 캐릭터와 퀴즈를 이용 해 기도문을 외우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약 3개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 또한 함께 수업을 듣거나 식사와 간식 나눔 등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성탄절에 모두 첫영성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복사단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캠프에 참여케 하고, 본당에서도 지속적인 교육을 한 결과 제단 아주 가까운 곳에서 주님께 봉사하는 복사단으로 거듭났습니다. 현재 아이들은 주일 오전에는 본당 미사에, 오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외부 미사로 주일을 보내고 있으며, 방학 중에는 스스로 평일 미사에 참례해 미사의 은총으로 주변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본당은 과연 어떤 땅에 속할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지낸 유년시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보내셨지만 지혜로운 청년으로 성장하셨고, 어디서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평가하기보다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복음 선포를 멈춘다면 그곳은 축복받지 못한 척박한 땅으로 남을 것이고,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한다면 언젠가는 백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비옥한 땅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