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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사람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올해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뉴스가 들립니다. “2023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 확실합니다.” 지난 여름 전세계 평균 기온이 종전 기록을 경신하면서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소식을 접하니 덩달아 한숨이 나옵니다. 사실 올해는 역대급 더위와 함께 극단적인 기상 이변이 유난히 잦았습니다. 동남아시아와 지중해 일대를 강타한 폭염과 그리스, 캐나다, 하와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리비아를 휩쓴 폭풍우와 대홍수 등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속출했지요.

 

이처럼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가 큰 걱정이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점은 다행스럽습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생태 위기가 심각해지는 만큼 인간의 잘못을 너무 지나치게 탓하는 경향도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간이 자연을 망쳐 버렸고, 사람 때문에 지구가 안전하지 않은 집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지요. 인류는 지구를 해치는 ‘나쁜 바이러스’이고 다른 생물종에게 ‘공공의 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자주 들립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보게 된 책 제목 「지구는 인간만 없으면 돼」라는 말마디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물론 기후 위기와 싸우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은 참 감동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이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인간은 지구에 해로움만 주는 존재일까?’ ‘사람들만 없으면 다른 존재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까?’ ‘인류가 사라지면 자연은 모든 면에서 다 좋아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책임 때문에 인간을 마치 지구 공동체에 불필요한 존재로 보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만일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생태 위기의 원인 제공자가 없으니, 어쩌면 생태계는 급속히 복원되고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번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지구에는 더 이상 아름다운 노래나 맑은 종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울림을 주는 시와 그림, 거룩한 전례, 땅을 일구고 다른 생물종을 돌보는 모습도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요. 사람들이 없어지면 지구 공동체는 그들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선물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기후 변화가 심각하더라도 ‘인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 있는 세상’이 더 좋습니다.

현재의 지구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먼저 ‘내 탓이오’ 하며 책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역할을 너무 하찮게 여기거나 그 고유한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 망쳐 놓고 회복하려 할 만큼 어리석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다른 피조물의 미래를 걱정하는 존재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결함과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고 문제를 극복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잊지 맙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사랑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존재입니다.”(「찬미받으소서」65항)

 

이 대림과 성탄 시기,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 존재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는 그분의 협조자로서 지구 공동체를 돌보도록 부름받았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 역할에 충실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 앞에 ‘사람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결국 문제 해결도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은 “사람 속에 들어 있고,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내년엔 좀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지구는 인간만 없으면 돼」라는 제목 위에 이런 말을 적어 봅니다. ‘그래도 지구는 인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