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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열려라!”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이곡성당 주임

 

요즘 다들 소통을 잘해야 한다고,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너나없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딱히 이전보다 소통을 잘하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소통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타고 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요긴한 어떤 기술이 있어서 그걸 배우면 잘하게 되는 것인가? 이것은 모든 사람이 힘들어하는 보편적인 고민이라서 신부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혼자 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더욱 애를 먹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된다.” “말이 안 통해.” “죽어도 말을 안 들어요.” 나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저쪽이 오해를 해서….”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너무나 귀에 익숙한 표현들이 아닌가? 이런 말들을 워낙 자주 하고, 또 자주 듣기 때문에 익숙한 것일 터이다. 저 표현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소통이 안 되는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인식이다. 즉 대화 상대가 표현이 서툴고, 말귀가 어둡고, 고집이 세고, 이해가 부족해서 소통 장애가 생긴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말을 잘 못하고 잘 못 알아들어 소통이 안 된다고 호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을 가리키는 지표가 아닐까?

 

역사상 최고로 말씀을 잘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와 능력이 있었으며,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시면 벌떡 일어나고, 죄인에게 “너는 용서받았다.” 하시면 강도가 성인으로 바뀐다. 하느님의 말씀이 전능하신 이유는 거짓이 없으시고 항상 진리만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며, 그분이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에서 진리가 나오고, 진리에서 힘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죄인이다. 죄지은 사람은 말을 똑바로 할 줄 모른다. 그런 사람의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구수해도 힘이 없다. 하지만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 사랑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것 아닌 평범한 말을 해도 마음을 흔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귀와 입을 열 때, 그럴 때라야 진심이 담긴 대화를 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에 가 닿는 말을 주고받을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달변이 아니라서 소통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진실함이 없고 사랑이 없는 것이 정말 문제인 것이다.

참된 대화는 내 앞에 있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고, 그럼에도 서로 느낌과 생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내가 그를 사람으로 치지 않는 것이 된다. 남이 말하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데 인색하고 끝까지 들어주기를 힘들어하는 까닭은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입장이 다른 것을 존중할 줄 모르고 말이 잘 안 통하는 것을 남의 탓으로 여기는 까닭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스승이신 분, 벙어리와 귀머거리를 고쳐 주신 분께서 우리 귀와 혀에 손을 대시고 “열려라!” 하고 말씀해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남의 말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할 줄 알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 정태우(아우구스티노) 신부의 ’신앙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태우 신부님은 〈빛〉 잡지 편집주간과 교구 문화홍보국장, 전산실장, 교구설정 100주년기념사업추진 홍보분과위원을 거쳐 2021년부터 이곡성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