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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언어와 문화 속에서 발견한 복음의 씨앗(1)


글 이한웅 사도 요한 신부|후쿠오카교구 선교 사목

찬미예수님! 〈빛〉 잡지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일본 큐슈 후쿠오카교구에서 선교 사목 중인 이한웅(사도 요한) 신부입니다. 신학생 때부터 일본에 건너와 생활한 지 올해로 10년이 됩니다. 그동안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본 가톨릭 교회는 2022년 기준 0.335%로, 인구수로 말하면 42만 명 정도로 한국 가톨릭 교회에 비해 많이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 깊은 곳에는 현세적 가치를 초월한 영원한 가치에 대한 존중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의 좁은 식견에서 아주 작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가깝고도 먼 일본에서의 이야기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카케하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나눔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원고를 부탁 받고 첫 이야기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일본에 갓 건너와 언어를 배울 때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는 그 나라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일본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복음의 씨앗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따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식사 전에 하는 인사말로 현지에 와서도 별생각 없이 내뱉곤 했는데 일본어 학원에서 경어를 배우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따다쿠」란 ‘받다’의 겸양어로 무언가를 주는 상대방을 높이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을 낮추는 말로 일상생활 안에서 복합 동사로 많이 쓰입니다. 저는 문득 이 흔한 인사말 속에 일본인들의 영성(spirituality)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 인사말과 더불어 남녀노소 한결같이 손을 모으는 모습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양식을) 소중하게 잘 받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는 대지의 은혜에 대한 감사, 혹은 작물을 길러 준 사람과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감사와 존중으로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로 식사에 앞서 한결같이 손을 모아 ‘이따다키마스’라고 고개 숙여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 비롯된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하나의 일상적인 의식(ceremony)과 같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식(食)이 사람(人)을 좋게(良) 기르고 살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상적인 식사 안에서 대자연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생활 중에 예수님께서는 사회 저변에 놓여 있는 소외된 이들과의 소박한 식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어쩌면 매일의 식사가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 파스카 식사(최후의 만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기르는 사랑의 성사를 제정하신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또 유치원생 때부터 잔반을 남기지 않는 일본의 식문화 안에는 비록 의식하지 못한 그들만의 하느님의 현존을 위한 노력과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어에서 생명이라는 말은 「이노치」 혹은 「세이메이」로 나뉘어 씁니다. 한국어로 ‘생명’인데 일본인들의 감성 안에서는 확연히 다른 뉘앙스로 쓰입니다. 전자는 물질적인 의미보다는 좀더 내면적이고 전인적인 의미를 지닌 반면 후자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생명을 뜻합니다. 집을 떠나면 집밥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내적 생명(이노치)’을 기르고 살리던 영양(가족의 사랑)이 그리워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따다키마스’를지극히 주관적으로 “이 음식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소중히 받겠습니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유치원 아이들도 급식이 있는 날이면 싫어하는 음식이 있어 완식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렇지만 매주 수요일 어머니, 아버지의 도시락을 먹는 날에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그건 도시락 안에 담긴 부모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체를 영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자판기 커피보다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려 준 커피가 더욱 향기롭고 맛있듯이, 우리의 생명은 물질적인 것 안에서 항상 내면적인 무언가를 느끼고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일본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어학 과정 중에 지금껏 간과하고 있었던 일상적인 행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통해 느낀 일본인의 종교심과 영성에 대해 다음 호에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금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4년 갑진년, 여러분들 가정에 값진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 이한웅(사도 요한) 신부님의 징검다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재 일본 후쿠오카교구에 파견되어 사목중인 이한웅 신부님은 2014년 일본 신학교로 유학을 갔고, 2018년 후쿠오카교구 주교좌 다이묘마치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