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글 황영삼 마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의 시간과는 달랐습니다. 나의 시대와는 다른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었고 그 시절의 나보다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더 많은 해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나도 그랬다며 공감해 주기’,‘괜찮다고 위로해 주기’,‘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주기’,‘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너만 그런 건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 전해 주기’ … 그렇게 시간을 보냈더니 자기들의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우리는 점점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지난 1월, 5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신부가 된 지 18년, 한번은 쉴 때가 된 듯하여 안식년을 신청했습니다. 석 달 뒤 신부가 19명이나 사는 대학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대학교에서 세상 두려운 20대를 가르치는 것도 두려웠지만 공동사제관에 사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가끔 봐야 반갑지 맨날 보면 좋은 사이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부담감을 안고 지난 1월 하양에 있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짐을 풀었습니다. 짐을 풀자마자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왔습니다. 강의의 기본은 프레젠테이션이고, 모든 시스템의 전산화를 익히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이해력을 요구했습니다. 방학이라 준비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한 달 이상은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실제 대학교 안은 전쟁터였고 그 안에서 저보다 먼저 온 신부님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셨습니다.

주일학교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매주 140명씩 총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1박 2일 신앙학교를 교리교사처럼 진행해야 했고, 각종 대회, 체험 프로그램도 주관하면서 강의할 때는 유능하고 유쾌한 교수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또 업무와 행정은 관공서나 기업처럼 처리하면서 우리 교구의 학교로 보다 잘 운영하기 위한 연구도 함께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내 일만 잘 해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돕고 협업해야 하는 일도 많아서 19명이라는 사제의 숫자가 많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 돕고 힘이 돼야 돌아가는 곳이 바로 대학교였습니다.

저보다 먼저 온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니까 가능한 일을 학교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습니까?", “아마 신부님이 더 하실걸요.” 그 말뜻은 학생들을 보면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한창 사랑받고 세상을 더 알고 싶어하는 청춘들의 사랑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사제의 마음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먼저 온 신부님들처럼 생활이 익숙해져 갑니다. 나와는 다른 시대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해 저는 친구가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가르치고 걱정하고 과거의 답을 제시만 하는 선배가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살아 주는 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 친구들과 함께 사는 이야기들을 해 보려 합니다.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 황영삼(마태오) 신부님의 ‘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황영삼 신부님은 죽도·만촌·원평·수성성당 보좌를 거쳐 1대리구 청년담당, 율곡성당 주임, 중국 청양한인성당 주임으로 사목했습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효성 캠퍼스의 인성교육원 교수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