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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들
60년 만의 상봉을 이루어 준 고마운 손 편지


글 이춘자 아녜스 수녀|성심셀린의 집 원목담당

2019년에 입소하신 김○○ 어르신은 80세이지만 한글 배움에 열성적이셨다. 한글을 배우시며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공부를 하던 중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어르신은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의 기막힌 사연들을 털어놓으셨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어르신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쫓겨나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며, 새어머니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게 해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콩 세 가마니 빚을 갚지 못해 그 집으로 15살에 시집을 갔고, 20살에 첫째 아들을 출산하고 이후 아들과 딸 2명을 더 낳았다. 맏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술주정뱅이 남편이 공무원에게 진 빚을 대신 갚기 위해 서울로 전근하는 그 집에 식모로 가게 됐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떠밀리다시피 떠난 어르신은 신분증도 챙기지 못하고 서울로 가 식모를 하면서도 공무원 부인의 착취로 인해 식당을 전전하며 일을 했고 심지어 술집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다.

모든 빚을 갚은 후에도 공무원 부인이 월급을 착복했고 돈을 모아 집을 사서 시골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자며 꼬시기도 했다. 또 어르신이 도망갈까 봐 일하는 식당에 찾아와 수시로 감시하며 갖은 악행을 일삼았다.

한글을 몰라 차를 탈 줄 모르는 어르신은 전셋집 주인의 도움으로 그 집을 빠져나와 거제도 전남 광양, 마산, 울산 등으로 옮겨 다니며 공사장 함바집과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어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해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였고,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일을 하다가 들통이 나 몇 년 동안은 월급도 없이 끼니만 해결하며 죽을 고생을 했다. 어르신은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다는 말에 속아 150만 원을 준 것이 화근이 되어 재판까지 받았지만 패소했고, 식당에서 일할 때 손님 중에 좋은 분이 자기 호적에 어르신을 올려 준 것을 알게 된 그 자녀들이 사망신고를 해 곤란해진 적도 있었다. 어르신은 못 배운 죄로 여러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손해를 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60대에 구미에 와서 재가복지 생활지원사의 도움으로 2002년에 주민등록증을 만들게 되었고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로 선정되어 생활에 안정이 되었다. 그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았던 어르신은 재가 복지 생활지원사의 권유로 2019년 11월 25일 ’성심셀린의 집‘에 입소했다. 입소 후 어르신은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무릎관절 수술로 신체적 건강도 찾았다. 또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세례를 받고자 교리도 배웠다. 교리공부 중에 세례를 받으면 원죄, 본죄가 다 없어지고 하느님 자녀로 새사람이 된다는 말씀에 어르신은 지은 죄가 너무 크다고 했다.

사는 게 고달플 때마다 어르신은 맏아들이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성심셀린의 집에 살면서 다른 어르신들이 생신이나 명절 때 자녀들이 찾아오고 전화 오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갔다. 어느날 어르신은 눈물로 나도 자식이 있는데 죽기 전에 아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는 게 소원입니다.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만나고 죽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르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주민센터 호적계에 의뢰해 아들의 주소를 알게 되었고, 글을 못 쓰시는 어르신 대신 제가 어르신의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어르신은 그 편지를 3일 동안 베껴 쓰셨다. 희망을 품고 어르신의 편지와 원목수녀인 내 편지를 동봉하여 빠른 등기로 부쳤다. 3일 후 기적처럼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고 어르신을 뵈러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김○○ 어르신은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다. 60년 만의 상봉! 드디어 어르신의 풍채와 모습을 닮은 맏아들이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다.

“저, 김○○ 어머니! 맏아들 정○○입니다.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모자는 보자마자 “어머니”, “아들아”하며 서로 얼싸안고 목이 메도록 울었다. “어머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단다.”

아들은 용접 일을 하고 있어 외지로 일을 하러 가면 몇 달을 지내기에 등기 편지가 반송될 확률이 많다면서 “저는 종교가 없지만 아마도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건강검진차 집에 왔다가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어머니의 등기 편지에 손이 떨려 한참을 열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한 맏아들은 그동안 어머니를 찾으려고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다. 60년 만의 만남을 주선하고 상봉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모든 결과를 주님께 돌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지난 7월 22일 모자가 만났고, 어르신은 8월 15일 루시아로 박재희 신부님께 세례를 받으셨다. 아들은 어머니를 만난 것에 감사 인사를 했고 그 후 몇 차례 어머니를 찾아오며 함께 사시는 어르신들과 나누어 드실 간식도 사오셨다. 또 어버이날에는 며느리와 함께 방문해 외식을 했고 대구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는 둘째 딸도 만났다. 이제 자녀들을 만났으니 한 많은 지난날의 아픔을 털어 내고 하느님의 자녀 루시아 어르신이 행복하게 자녀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시기를 기도드린다.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다리 놓는 사람들2023년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개최한 2023 다리 놓는 사람들 이야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입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