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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절제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

대구대교구청 내 카페 카리타스에는 다회용 컵 반납기가 있습니다. 음료를 포장할 때 컵 보증금을 지불하고, 사용한 다회용 컵을 이 반납기에 넣으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지요. 이 매장은 친환경 제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비누바,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부터 물에 쉽게 분해되는 주방세제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제로 웨이스트’ 문화가 조금씩 우리네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생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생태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생태 발자국은 인류가 지구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도록 마련된 지표인데, 수치가 높을수록 자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아무런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이 공동의 집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성찰하며 생태 발자국 크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애씁니다. 자발적으로 이런 실천을 하는 이들이 요즘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참 희망적입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는 ‘좀 더 많이’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화려하게’를 추구한 결과입니다. 과거에 인류가 직면했던 문제가 많은 경우 ‘결핍’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오늘날 기후 변화는 ‘과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덧셈’보다는 ‘뻘셈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에너지 사용이든 상품 소비이든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지구 공동체에 적은 부담을 끼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태적 절제’가 어떤 분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식과 금육이 여전히 의미 있는 종교적 실천이듯이, 하느님 창조 세계를 위해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는 좀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시 말해 지구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 소박함’을 실천하는 일은 부족하거나 고된 삶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을 넘어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저 쓰레기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속도를 늦춰, 작은 것들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소박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내적 여유를 줍니다.

생태영성은 ‘적게 가지고도 큰 사람’으로 살아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강조하듯이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222항)라는 확신을 갖고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222항)을 키워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우리네 삶에 무언가를 자꾸 더하려 하기보다 덜어내면서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추구함으로써 생태영성은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지구 공동체의 안녕을 돕습니다. 이런 점에서 생태영성살이는 더 큰 선을 위해 좀 더 낮아지고 좀 더 작아지는 과정입니다.

다시 돌아온 사순절, 이 회개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식사나 취미 시간을 줄이며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 전통의 연장선에서 올해 사순 시기에는 ‘생태적 단식’을 통해 참회와 보속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탄소 단식, 플라스틱 단식, 배달 단식 등 우리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뺄셈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러한 ‘자발적 자기 제한’을 통해 우리네 생태 발자국이 좀 더 작아질 수 있다면, 그만큼 많은 존재들이 고개를 들고 다시 생명을 노래할 수 있겠지요. 그런 희망으로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한 40일의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없는 대로 부족한 대로 불편한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