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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깨어 있다는 것”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이곡성당 주임

성탄 축하를 주고받은 지 며칠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설이란다. 용띠 갑진(甲辰)년 뜻이 어떻고, 푸른색이 어떻고 하면서 말잔치가 한창이다. 어릴 때 설날 기억은 차례상에 맛있는 음식이 푸짐했던 것과 세뱃돈 받아서 군것질한 것이 아직도 뚜렷하다. 섣달 그믐날 일찍 잠들면 눈썹이 센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열두 시가 될 때까지 한사코 일어나 있었던 기억도 있다. 눈썹은 이미 세어 버렸으니 결국 잠만 손해 본 셈이다.

눈썹이 세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다가 인생의 큰일을 망치게 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정신을 차리고 살라고 경계하는 성현의 말씀이 많이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깨어 있어라.”(마태 24,4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엄중하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준비하고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눈을 뜨고 있다는 것,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떻게 살면 깨어 있는 삶이 되는 것일까?

마태오 복음의 이 말씀 뒤에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렇다. 눈을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펴야 하는 것은 바로 주인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 내가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날 무엇이 내게 보람으로 남을지, 혹은 미련으로 남을지 생각해 보면, 이 한 번뿐인 인생에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사랑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지만, 또한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사람에게 큰 상도 약속하신다. 병행하는 구절이 있는 루카 복음에서는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시중을 받으면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하기 위하여 깨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를 받는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설이라는 말은 순우리말로 새것이라는 뜻이 있고, 또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고 조심스럽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낯이 설다.”고 말할 때의 그 설인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날이고 돌고 도는 세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 어제와는 다른 날, 오늘부터는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날이 저물 때, 오늘 나는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살았는지 돌이켜볼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또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새날이다, 내 남은 인생이 시작되는 날이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하고 다짐할 수 있다면 생각지 못한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새로울 것이 없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날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새 사람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다.

육신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영혼이 젊어지고 눈이 밝아져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날수 셀 줄 아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