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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들
나는 보통날을 함께하는 ‘온(溫)
-지기’입니다


글 이수미 지역주민 활동가|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

 

성주군에 거주하는 중장년 1인 가구 중 사회적, 관계적으로 고립된 이웃을 찾아 지원하는데 함께 활동할 ‘온(溫)-지기’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무작정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에 찾아가 신청서를 작성했고 그렇게 ‘온(溫)-지기 이수미’가 되었다.

밑반찬 배달봉사로 매주 한 번씩 방문하는 금수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몹시도 추운 겨울 ‘정○구’ 씨를 만났다. 정○구 씨는 지적장애로 사람들과 소통이 어렵지만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는 분이라고 소개받았다. 복지사 선생님께서 한 달에 두어 번 말벗이 되어 줄 나를 소개하셨다. 어색한 첫 만남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매주 목요일마다 방문해 그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며 특수아동을 많이 만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살려 그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함으로써 사람,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 그와 함께한 활동은 커다란 색지에 색연필로 이름을 쓰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묻는 말에는 곧잘 대답했지만 본인 소개는 또 다른 것이었나 보다. “브끄러버예!”를 연발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타인들 앞에서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앞으로의 활동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달에 두어 번이지만 매주 그를 만나러 갔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최근 골이 깊어진 할머니와 가족들의 관계 속에서 그가 느끼는 슬픈 감정을 공유받으며 그가 조금 더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격려했다. 그렇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 것이 그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됐을까?’라는 생각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가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 고민을 복지사 선생님께 털어놓자, 매주 목요일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요즘 큰 행복이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한쪽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고 경계성 지능지수에 해당하는 그에게 90세가 넘은 할머니는 참 많은 것을 요구하셨다. 그 요구를 채워줄 수 없는 상실감이 그를 슬프고 우울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식물을 활용하는 원예 치유 활동을 진행했다.

식물에 이름도 지어주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도 생각해 보며 반려식물의 이름을 짓는 활동을 통해 관심은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간에 꼭 필요하며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더니 그는 더듬거리며 “내한테 그동안 할머니가 해 준 게 다 사랑이라 고마버예.”라고 말을 했다.

그는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와 소통하고 나누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람과 세상에 어떻게 소통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깊숙이 내재 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할 기회와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상을 향해 마음껏, 뛰어나게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그가 반려식물에게 붙인 이름인 ‘보통’ 만큼 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처럼 오늘도 그의 하루와 앞으로의 삶이 ‘보통’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온(溫)-지기’로서 그가 원하는 ‘보통의 날’이 계속될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