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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마태 6,28)


글 황영삼 마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전 소주 마실게요.”라는 말에 많이 놀랐습니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아니면 달달한 과일소주를 좋아할 줄 알았던 학생들이 소주를 즐겨 마셔 놀랐습니다. 당황스러움에 학생들이 소주를 즐겨 마시는 이유를 분석해 봅니다.(물론 취향에 따른 선택이지만)

첫째, 배부른 게 싫다. 배부른 게 싫은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의 상당수가 기숙사나 자취를 하는데 삼시 세끼를 먹어가며 생활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혼자 살다 보니 밥 먹는 것 자체가 일이 되고, 아직 젊다보니 간편식(삼각김밥, 컵라면, 과자류…)으로 해결하거나 하루 중에 식사 약속이라도 잡히면 그냥 굶고 기다립니다. 또 밥값이 체감상 비싼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 누가 “신선한 과일, 채소는 어른들이 다 먹고 젊은 사람들은 못 먹고 사는 시대”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식습관이 누적되다 보니 적게 먹어도 배부르거나 아니면 폭식하는 두 가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요즘 대학가에도 소주와 맥주가 오천 원 이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술값만 만 원부터 시작되다 보니 최저 시급 9,620원(2023년 기준)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친한 친구들이랑 만나야 돼, 동아리 모임해야 돼, 후배들도 챙겨야 돼, 종교 생활해야 돼, 학생회도 해야 돼, 발표회, 전시회, 야유회 등등의 많은 모임을 갖는 친구들은 일주일에 4일은 나가서 회식을 해야 되는데, 빨리 취하고 취한 김에 빨리 잘 수 있는 소주가 맥주보다 낫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내야 하고, 쓸 수 있는 돈은 적고, 부모님에게 타 쓰는 돈을 미안해할 줄 아는 학생들, 아직 젊다 보니 건강 걱정은 잠시 미뤄두게 되는 나이. “신부님, 요즘에 누가 저한테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마음이 짠해져 인사 가운데 꼭 물어봅니다. “밥 먹었어?”, “밥은 잘 챙기묵고 댕기라.” 예전에 본당에서 했던 ‘식사하셨어요?’라는 쉬운 인사가 요즘엔 진심을 담은 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철저히 개인화되고 익명성을 지닌 세대, 그 어느 시대보다 글로벌해졌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군중이 되어 버린 세대인 아이들이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했던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원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신부이고, 교수이고, 한참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두세 번 얻어먹으면 뭐라도 사 주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사는 커피 한잔을 마실 때면 아이들이 ‘알바’하며 참아낸 시간을 먹고 있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맛있게 받아먹어야 합니다. 사랑을 주고, 은혜를 갚는 경험 역시 이 젊은이들에게는 행복한 시간일 테니까요. 이렇게 시대나 세대가 흘러도 서로를 위하는 감사와 진심은 소통의 시작인가 봅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다들 좋은 하루!”,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젊은이들은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진심을 가지고 그들 옆에서 걸음을 맞춰봅니다.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