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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를 위한 생태영성
새로움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

 

어쩌다 보니 서울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두리번거리며 살고 있는데, 하루는 직원 분들이 꽃 화분 하나를 선물해주시더군요. 이름은 ‘칼란디바’이고 꽃말은‘설레임’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설렘 가득한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으니, 그분들 얼굴이 조금은 덜 낯설게 보였습니다. 새로운 삶의 자리를 어색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저와 달리, 새로 온 사람을 기대하며 응원해 주는 모습에서 여유도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그 꽃 화분은 새로움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 보라는 초대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새로움은 설렘과 동시에 긴장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새로운 길은 익숙하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설레지만, 낯선 것을 대면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따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동경하면서도 결국 ‘하던 대로’ ‘있던 대로’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예전 그대로이길 원합니다. 그만큼 ‘안정’이라는 요소가 우리에겐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새로움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한다면, 앞으로의 날들은 어제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생태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식, 새로운 생활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발생시킨 때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와 같은 생활 양식으로 이 지구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여전히 높습니다. 예를 들어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이야기하듯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는 일이 생태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이 제안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시야를 넓혀서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여는 일”(191항)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져 보라는 뜻이라 할 수 있겠지요.

새로운 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은 좋게 평가받는 것이 처음부터 모든 이의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지요. 에펠탑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자 자랑이지만, 건립될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합니다. 고풍스러운 파리 거리에 세워진 300m짜리 거대한 철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펠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처음엔 비호감이었지만 자주 접하게 됨에 따라 호감도가 높아지며 거부감도 사라지는 현상을 일컬어 ‘에펠탑 효과’라고 부릅니다.

요즘 넘쳐나는 생태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이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문제를 너무 과장하는 것처럼 들리고, 현실성 없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정적인 반응 역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생태적 전환 역시 어느날 갑자기 ‘만장일치’로 이루어지지 않고 ‘옥신각신’하는 과정을 통해 찾아올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새로운 길이 옳다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가 당연한 듯 그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요?

‘새로움’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달, 3월입니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봄을 알리는 꽃들이 활짝 피고, 부활을 준비하며 새로운 결심을 하는 등 여기저기 새로운 기운이 가득합니다. 새로움에 설레는 이 3월에, 내게 익숙해진 것을 넘어 주위의 새로운 것들에 좀 더 마음을 열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가지 않던 다른 길을 걸어 보고, 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낯선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보고, 잘 모르던 이웃에게 인사도 건네 보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가 새로움 앞에 ‘망설임’으로 주저하기보다는 ‘설레임’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더 활짝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