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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년을 지내며(3)
- 2015년 6월 23일부터 2016년 6월 23일


글 김형호 미카엘 신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목

 장사밑천: 7월 29일

여기 화폐는 세파프랑(FCFA. 중서부아프리카 6개국 사용)을 쓴다. 한국과 비교하면 1:2정도로 1,000세파프랑이면 2,000원이다. 주변 거리에서 전화비 3,000세파프랑을 충전하고 10,000세파프랑 지폐를 주었더니 잔돈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성당 마당에 있는 성물 파는 곳에서 상고어 신약성경 한 권(2,500세파프랑)을 샀다. 다시 10,000세파프랑을 주었더니 거스름돈이 없다고 주변 좌판 상인들에게 가서 돈을 바꾸어 오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하고 돌아왔다. 자기에겐 3,000세파프랑밖에 없다 해서 할 수 없이 구약성경과 함께 7,000세파프랑 어치를 사고 잔돈 3,000세파프랑을 받았다. 그것으로 전화 충전비를 지불했다.

여기 사람들의 기본임금이 25,000세파프랑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정도 급여를 받고 생활하니 10,000세파프랑은 꽤나 큰돈이다. 그러니 골목 좌판 상인들 중에 7,000세파프랑을 거슬러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생활비를 보태고자 생필품, 주로 먹거리를 조금씩 마련해 놓고 팔며 놀다가 몇 개 팔려 현금이 생기면 그날 사는(먹는)데 필요한 것들을 산다. 그러니 그만한 현금을 갖고 살지 못하는 건 당연한데, 그들에게 당당하게 10,000세파프랑을 내어 놓는 짓을 했다.

이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고조(마뇩)로 만드는 망벨레(두툼한 김밥 한 줄과 비슷한 크기) 하나에 50세파프랑이다. 그러나 작은 코카콜라 한 병은 600세파프랑, 전화비는 1분에 50세파프랑, 주일 봉헌함엔 주로 25·50·100세파프랑이 대부분이다. 계란 하나에 125세파프랑, 거리 맥주집의 현지 맥주 한 병 600~1,000세파프랑. 물가를 보면 국내생산물(농산물이 전부)은 많이 싸고 수입품(일부 농산물을 제외한 전부)은 원산지보다 더 비싸다. 그러니 현지인이 수입품을 쓴다면 부자인 셈이다. 적어도 오늘 나는 분명 그들에게 생각이 짧은 친구였다. 2,000~3,000세파프랑이 장사밑천인 사람들에게 과시라도 하듯 10,000세파프랑을 내밀었으니….

 

몰입: 7월 30일

매일 밤 방안으로 쥐가 들어와 놀다 간다. 오래 되어 너덜너덜한 천 방충망을 수선하고 테이프를 바르며 임시 땜질을 했다. 쥐는 다녀가도 먹을 것이 없으니 괜찮은데 그 구멍으로 모기가 들어온다. 그래서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꽤나 열심히 수선했다. 모기에게 덜 물리기 위해, 가능하면 안 물리기 위해….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방충망 땜질)을 그리 열심히 하며 ‘이렇게 몰입하면 안 될 일이 없겠다.’ 싶었다. 자주, 건성으로 하는 언어공부와 기도생활,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별 정성 없이 흘려버리는 시간과 굳이 안 해도 되는 재밋거리들에 빠져 있는 순간들…. 물론 이런 것들도 모이면 삶이 되고 나의 행복한 역사가 되겠지만 적지 않은 오랜 시간 의미 있는 일들에 몰입했던 시간의 부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뭔가에 대한 간절함이 사람을 몰입시킴을 모기와의 전쟁을 통해 새삼 느끼는 하루였다.

 

아프리카 도심의 밤: 8월 1일

이곳은 밤이 길다. 하루 12시간은 어둠이고 12시간은 낮이다. 일 년 동안 30여 분 정도의 차이가 있단다. 이 긴 밤은 잠자기가 너무 좋기도 하고 지겹도록 길기도 하다. 긴 밤사이 몇 번 깨는 시간이 고요한 성소가 되기도 하고 약간 짜증나는 밤이 되기도 한다. 외기가 차단되는 창문이 없으니 밤벌레 소리와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 개 짓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린다. 한 주에 한 번 꼴로 신난 개들이 밤새 5.1채널로 떠들기도 하고 취침 중 내리는 폭우가 밤의 적막을 깨고 요동치기도 한다.

좀 특별한 예식도 있다. 한 주에 2번 정도 밤새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떨어진 거리에 따라 아주 크게 들리기도 하고 잠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들은 죽은 이를 위로하기 위해 밤샘 고스톱 대신 스피커와 마이크를 내어 놓고 노래를 부른다. 내 집 가까운 곳에 초상집이 있으면 떠난 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날은 밤이 조금 두렵다. 이런 날엔 같이 축제(슬픈 예식)에 동참하든지 시끄러움을 이겨낼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겠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정도 밖에… 다행인 것은 이틀에 하루 정도는 아주 고요한 밤을 맞는다. 오늘 밤, 아주 가까운 곳에 하늘로 떠난 이가 있다. 합창과 함께 북소리도 들린다. 그를 위해 묵주라도 돌려야겠다.

 

봉헌행렬: 8월 3일

봉헌물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주일미사 때 현금도 봉헌하지만 현물봉헌도 한다. 현금봉헌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이 춤을 추며 각자의 봉헌물을 들고 와 사제의 성수 축복과 함께 봉헌한다. 주식인 고조(마뇩, 우리의 쌀과 같은 주식)도 있고 포도주와 제병, 초, 바나나, 계란 한 판, 물고기, 생수 1병, 바게트빵, 마가린, 옥수수기름, 빗자루, 소금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봉헌된다.

처음에는 ‘아! 이런 것들도 봉헌하는구나.’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봉헌물을 절실히(?) 쳐다보게 되었다. 봉헌된 것들이 한 주간 식탁에 올라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봉헌물들이 떨어지면 식탁도 빈약해진다. 꼭 필요한 것은 사야 하겠지만 가능하면 버티는 편이다. 계란이 떨어지면 빵만 먹어야 하고, 그 주간에 닭이 봉헌되지 않으면 닭고기는 먹기 어렵다. 봉헌된 생수는 한두 병이지만 제일 먼저 신나게 나눠마신다. 물고기도 마찬가지!

어제는 견진성사가 있어서 주교님께서 방문하셨다. 85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미사는 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당연히 현물봉헌 행렬도 길었다. 보이지 않던 염소도 두 마리, 평소 한두 마리였던 닭도 십여 마리, 계속되는 빵과 계란의 행렬, 그리고 잼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몇 주간 맛있는 것들을 충분히 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축하음식을 나눠 먹고 주교님이 떠나실 때 주임신부는 착하게도 모든 것을 차에 실어드렸다. 대식구가 사는 주교관도 먹고 살아야 하니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성당도 큰 성당이니 더 잘 챙겨야 하는데….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습관적으로 빵을 잘랐으나 아무 것도 넣지 못한 채 씨~익 웃으며 다시 덮고는 빵만 먹었다.

 

수선: 8월 6일

공구상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다녀갔다. 떨어진 것을 깁는 전문이란다. 그는 작은 나무 상자에 신발이나 가방, 허리끈 등을 깁고 수선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 경비원이 허리끈을 수선해 달라고 맡겼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적어도 10년은 쓴 것 같았다. 끊어진 허리끈을 잇고 천을 덧대며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농담 삼아 “죽을 때까지 쓰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허리끈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한다.

수리명장은 한 20여 분, 곧 떨어질 것 같은 너덜너덜한 허리끈을 튼튼한 끈으로 깁더니 50세파프랑을 받았다. 이런 일을 열두 번은 해야 현지 맥주 한 병 사 먹을 수 있다. 나도 떨어진 것, 깁을 것이 있나 방을 살펴 찾아 보았으나 하나도 없었다. 간단한 실 바느질을 몇 번 하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가방, 허리끈, 신발 등 떨어지도록 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혼의 바느질은 어떠할까? 겉은 화려한데 내면은 끊어진 허리끈을 방치한 것처럼 그렇게 어제와 오늘을 살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앙: 8월 8일

여기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중아공 신자(우리 성당 교우)들 신앙의 열정이 크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성당 교우들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 성당은 신앙의 순수함과 열정이 살아있다. 매일 아침미사에 300여 명이 참례하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성체조배가 지속된다. 가끔가보면 20명에서 150여 명이 기도하고 있다. 간간이 평신도 교리교사와 본당신부의 설교가 있다.

최근 며칠 야간기도모임이 있었다. 3일 중 2일은 전기 없는 밤인데 밤샘 철야기도를 한다. 피곤하면 비만 피할 수 있는 성당의 장괘틀에 기대어 졸거나 마당 나무 밑에 거적을 깔고 잠시 잔다. 모기 퇴치기는 당연히 없다. 그리고 아침 6시 미사에 참례한다. 사람이 바뀌는 것 같긴 한데 언제 쉬는지 모르겠다. 열심한 사람들 얼굴은 항상 있다.

어제부터는 2박 3일간 초중고 학생들이 신앙학교 같은 것을 했다. 물론 잠은 성당 바닥이나 작은 교실, 바깥의 나무 밑에서 잔다. 우리로 치면 신앙학교인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기쁘게 한다. 여긴 기본이 열악한 환경이니 모든 상황이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삶인 것이다. 본당 교우는 물론 교리교사들, 본당 신부님까지 다들 내가 보기엔 너무나도 열정적이다. 감히 내가 따라 갈 수도, 흉내조차 낼 수도 없을 만큼…. 이들은 성체의 기적을 ‘참으로 온전히 열정적’으로 믿는 것 같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