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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그분이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1996년 지적, 정서적 발달의 손상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장애를 가진 분1)들을 위한 사회사업 세미나 가운데 일부를 독일 남서쪽 최남단에 있는 헤르텐 마을에 있는 성요셉의 집에서 했다. 그곳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특수 초·중등학교가 있었다. 학교를 견학하다가 “커뮤니케이션 지원 연구소”라는 팻말이 붙은 방을 보았다.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여쭤보았다. 그 연구소는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 유치원·학교 교사, 생활재활교사, 직원재활교사들에게 의사표현 능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과 도구에 관해 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그 방에는 다양한 도구들과 기계들이 있었다.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예, 아니오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녹색 벨과 빨간색 벨이 달린 도구에서부터 하고 싶은 말을 입력하면 음성으로 바꾸어주는 소형 노트북 크기의 토커(talker)라는 기계도 있었다.

그때까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생활한 경험이 없었기에 이런 노력이 신기하게 느껴져 다시 질문을 했다. “한 사람과 오래 지내면 이런 도구들 없이 상대방 의사나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이에 관해 연구하고 도구들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때 안내해 주던 선생님이 대답했다. “우리는 손상 때문에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자기 말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우리가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들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또 질문했다. “그러면 이런 도구를 활용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습니까?” 그 교사들은 나를 다른 교실로 데리고 가서 그 반의 하루 일과표를 보여주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그날 할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과표를 세웁니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하루 일과가 그분들 일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1)실은 장애를 겪게 된 분이라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현대 장애학에서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하는 것 자체는 장애(handicap)”가 아니라 손상(demage)이며, 사회환경(건축물, 채용기준 등)이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게 할 때 장애(handicap)가 생겨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곧 그분들은 손상을 가지고 있고, 장애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주는 도구나 방법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시설에 근무하는 많은 동료들 역시 그분들이 자기 말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많은 동료들이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우선 우리나라에는 아직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한 주거시설에 근무하는 분들을 위해 특성화된 전문교육이 없어 이런 가능성들을 알고 있는 동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어려움은 한 명의 생활재활교사가 지원하고 동반해야 할 사람이 4~5명씩 되어 커뮤니케이션 지원 도구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가르쳐 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장애인 주거시설 평가기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아주 큰돈이 들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 형편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2015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 한 장애인 작업장에서 특수교육과 학생자원봉사자, 직원, 그리고 당사자들이 함께 장애를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지원 파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파일에는 정교한 손동작을 하기 힘든 사용자를 생각해서 나무 손잡이를 붙여 두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는 그들과 그들 사회의 의지가 느껴졌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 역시 각자 관심사나 취미,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는 말도 다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또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사람만의 고유한 말을 듣고 그와 대화하고 싶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고 믿는다면 교회도 그것을 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분들만 자기 의사를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신체나 지적 능력의 손상뿐 아니라 경제수준, 고용형태, 연령,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자기 의사를 스스로 표현하는데 “장애(handicap)”를 겪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말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여러분께서는 이웃들이 자기 의견을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 현실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분들은 우리 사회를 위한 예언자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뜻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은 우리 카리타스 동료들은 이 사회를 위한 “스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