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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뿐입니다
- 교본 완필에 부쳐


글 구희서 안젤로|대명성당

 

우리는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늘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몇 해 전 늦깎이 신자로 가톨릭에 입문했습니다. 여느 신자들처럼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쁘레시디움 단원이 되어 부지런히 활동했고, 성경완필과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를 모두 순례하며 초보신자로서 신앙심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교본필사의 의무가 주어졌고 교본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뭐지? 내가 무엇 때문에 쓰지?”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건 세상이 아니고 제 마음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필사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비록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지만 다 쓴 뒤에 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지휘 아래 악의 세력과 싸우는 군대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맞설 수 있도록 굳건한 믿음의 방패를 잡고 성령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소망과 간구를 올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쁘레시디움에서는 여남은 명의 단원들이 매주 정한 요일에 만나 주어진 의식에 따라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기도 뒤에는 활동보고와 협의를 거치면서 친교모임을 갖습니다. 그러니 한 형제나 다를 바 없습니다. 레지오 정신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이 지니신 높은 믿음의 덕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바치는 기도의 힘이 세상 어떠한 것보다 막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았고, 신앙을 가진 뒤부터는 그들을 돕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마이클 토허 신부님과 함께 세계 최초의 쁘레시디움을 만들었으며, 성모님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깊은 애정을 보였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레지오 확장에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오늘날 레지오의 자생력은 프랭크 더프의 희생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생명의 울림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쁘레시디움 단원이라면 누구나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을 읽고 숙지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단원들이 알아야 할 지식과 신심활동, 봉사, 희생정신까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교본을 수시로 눈에 익혀 성모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장 힘 있는 전구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성모님을 신뢰하며 그 높은 믿음의 덕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자칫 규율을 소홀히 하면 조직의 균형이 깨져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 중에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다. 따라서 엄숙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 이상은 교본이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저의 묵주기도는 형식에 그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묵주의 뜻에 반할 뿐더러 진정성도 없습니다. 단원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그릇된 지식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묵주의 의미를 담아 정성껏 바친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붉은 해가 떠오르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그러나 우리 레지오의 새벽은 아직도 먼 듯합니다. 줄어드는 단원 수만 봐도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단원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일부 단원들의 의식이 상급평의회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 더 큽니다. 공동체에서 각기 다른 마음은 레지오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우리 모두 희생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어느새 교본필사의 끝이 보입니다. 무엇인가 끝났을 때 우리는 종점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맑은 정신으로 필사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나 가슴은 보름달처럼 환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밝히는 가벼움이자 순수한 믿음의 기쁨입니다. 사람들은 힘든 일을 포기할 때 ‘할 수 없다.’는 합리화를 주장합니다. 또한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기약 없이 미루기도 하지요. 그러나 완벽한 것보다는 시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교본을 읽고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핑계나 포기는 시간만 낭비할 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뿐입니다.

교본 완필은 저의 시간과 정성이 빚은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주님, 찬미와 영광을 드리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