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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현장을 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아십니까? 그 첫 번째 이야기
- 바티칸 공의회는 왜 열려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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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공동체위원회

 

우리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공동체의 근본정신이며 이 시대 교회의 정신이고 우리 교회가 뿌리내려가야 할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얘기하기 전에 ‘공의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의회를 알려면 일단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스라엘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으러 혈안이 되어 다니던 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사울입니다. 사울! 여러분, 사울을 아시지요?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탔던 바리사이 중의 바리사이 청년입니다. 사울이 어느날 대사제에게 특명을 받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마스쿠스를 향해 가던 중,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한 빛을 받게 됩니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사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주님을 만나게 된 사울은 완전히 회개하고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태어나면서 예전과는 반대로 열렬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것도 유다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상세하게 나오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할례 문제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는 유다인들과 토론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열두 사도가 모이게 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 회의가 첫 번째 공의회가 됩니다. 그 이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면 세계의 주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해결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스물한 번째 공의회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를 보내면서 바친 신경이 있지요. 그 신경 이름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입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한 ‘니케아신경’을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개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의회에 대한 설명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교회의 또 다른 역사를 살펴볼까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내가 가진 것, 네가 가진 것 따로 없이 한 곳에 모으고 필요한 만큼만 각자 배분 받아서 썼다고 하지요. 다 같이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가난해서 슬프고, 누구는 부자여서 떵떵거리고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기쁨을 나누면서 그 박해 중에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 점점 변해가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 할례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다른 문제들이 생기면서 작고 큰 규범들이 생기고 교회를 이끌어가기 위해 틀이 하나둘씩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면서 교회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주의적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최고 통치자인 왕이 있고, 신하가 있고, 그 밑에 평민이 있는 피라미드 구조가 되어 버린 거죠. 교황이 계시고, 사제가 있고, 수도자가 있고, 평신도가 그 밑에 있게 되는 식이 되어 버린 겁니다.

제일 밑의 층에 있는 평신도는 그저 가르침을 받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리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 신심위주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례에서는 그저 예쁜 말로 하면 참관자, 솔직히 말하자면 구경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연세가 있으신 신자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미사를 라틴말로 하고, 사제의 얼굴을 마주하고 미사를 드릴 수도 없어서 묵주알만 돌렸던 예전의 미사를요.(다음호에 계속)

 

이번호부터 소공동체 현장을 가다를 통해 소개되는 글은 교구 소공동체위원회에서 발행한 옹기종기에 실렸던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