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당사자 역량과 권한의 강화로 스스로 돕기를 촉진하는 임파워먼트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꽃동네대학교 카리타스학 전공 교수

 

“이 부추 가져가, 올해 첫 소출이야.”

한 본당사회복지위원회의 모범사례를 들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며 생기있게 살고 계시는 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분은 일찍 홀로 되셔서 시장에서 음식장사를 하며 아들을 키웠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취직한 아들이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는 조현병에 걸렸다. 할머니는 여든 가까운 나이에 아들까지 돌보셔야만 했다. 연로해 장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할머니는 동네에서 파지와 고물을 주워 팔아 생계를 이어가셨다. 할머니께서 살던 동네가 재개발 되면서 대부분의 이웃이 이사를 가고 10평 남짓 되는 할머니 댁도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집 주변에 온갖 폐기물과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할머니 댁도 모아온 고물과 파지로 가득 차 있었다. 본당사회복지위원들이 동네 마실 삼아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렸다. 집안 상황을 알고 나서는 국과 반찬을 마련해 할머니와 나누어 먹었다. 차츰차츰 서로 친해졌다. 어느 날 “할머니, 바깥에 있는 고물과 쓰레기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할머니께서 허락하셔서 본당 봉사자 몇 분이 폐기물은 버리고, 돈이 될 수 있는 물건은 모아 할머니가 원하신 창고에 말끔하게 정리해 드렸다. 쓰레기가 쌓여있던 곳에다 무엇을 하면 좋 을지 할머니와 상의했다. 할머니는 텃밭을 가꾸고 싶어하셨다. 돌을 골라내고 땅을 갈아 할머니께서 밭 만드는 일을 도왔다. 할머니는 밭농사 전문가셨다. 절기에 맞게 부추, 오이, 그리고 파도 심었다. 반년이 흘러 본당사회복지위원이 반찬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뵈었더니 할머니께서 “이 부추 가져가, 올해 첫 소출이야! 원래 부추는 맨 처음 것이 제일 맛있어. 보약이나 다름없어, 피를 맑게 해 줘.” 하시며 아들에게도 안 주고 아껴 둔 초벌 부추를 한 움큼 뜯어 나누어 주셨다. 본당사회복지위원이 “우리집 부추는 이렇게 안 자라던데요.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잘 키우세요?”라고 여쭈어보면 할머니께서는 “퇴비는 언제 줘야 하고, 물은 이렇게 줘야 해.” 하시며 열심히 가르쳐 주셨다. 그럴 때 할머니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 당신이 수확한 채소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어 기쁘다고 하셨다. 그 본당사회복지위원들은 할머니를 만나며 그분이 겪는 어려움보다 강점에 더 관심을 가졌다. 밭을 만들지 말지, 어떻게 만들지는 할머니 스스로 결정하게 기다렸다. 본당사회복지위원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그분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도와드렸다. 할머니는 직접 채소를 가꾸셨을 뿐 아니라 농사짓는 방법을 이웃에게 가르쳐주고, 그 소출까지 나누는 분이 되었다.

 

“이제 다시 노비생활로 돌아가야지.”

얼마 전 한 사회복지 동료의 SNS에서 충격적인 표현을 보았다. 행복했던 여름휴가 사진을 보여준 후에 그는 “이제 다시 노비생활로 돌아가야지.”라는 말을 썼다. 늘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던 그가 이런 글을 쓴 이유가 궁금했다. 휴가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면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이 없거나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쳐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아무 영향력이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냉소와 체념은 아니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리에 떠돌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 그는 일터로 돌아가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가톨릭교회 사랑실천다운 모습일까? 가톨릭다운 사랑실천이 되려면 우리는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당사자 잠재력을 믿고, 변화를 소망하는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첫 사례에서처럼 당사자가 지닌 강점을 먼저 보고, 그가 자신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전문가라는 것을 인정하고 신뢰하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당사자가 해결책을 찾고 그 해결책의 실행을 도와주는 협력관계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는 접근방법 가운데 하나가 임파워먼트(Empowerment)다. 임파워먼트는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회 전체 차원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개인차원에서 임파워먼트는 다음 네 가지 요인으로 구성된다. 첫째, 업무를 맡기면서 당사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부합하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업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도와서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게 해야 한다. 셋째, 불필요한 간섭 없이 재량권이나 주도권을 가지고 자기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넷째, 당사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자기과업을 수행하는 방식, 절차, 그에 관한 관리와 결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당사자의 역량과 그 역량을 펼칠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일을 하려는 동기를 증진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며 각자가 지닌 전문성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돕는다. 조직이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그 환경을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국제카리타스 윤리강령은 가톨릭교회 사랑실천(Caritas)다운 실천을 위한 네 번째 원칙으로 임파워먼트를 제시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인용하고 있다. “저는 시끄러워지기를 바랍니다. (중략) 그러나 저는 각 교구 안에서도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가 거리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가 세속적인 것, 편안하고 고착된 모든 것 (중략) 우리 자신 안에 우리를 가두는 모든 것에 대항해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당도, 학교도, 기관도 모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아르헨티나 리우데자네이로 젊은이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서, 2013년 7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교회와 사회가 시끄러워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분이 말하는 시끄러움은 어떤 것일까? 또 그 시끄러움은 무엇을 위해 밖으로 번져나가야 할까? 그것은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사명인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이 경탄”(회칙 『인간의 구원자』, 10항)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이기 위해 존엄성이 침해되어도 말할 수 없던 사람들 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고, 교회도 그들과 함께 외치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로 인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라는 초대가 아닐까? 또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사이에, 하느님 백성인 교회 구성원 사이에 서로를 함께 “사랑의 문명”을 건설해가는 동지로 소중하게 대접하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수난 당하기 전날 저녁에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중략)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2~15)라는 말씀을 남기신 분을 함께 뒤따르자는 권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