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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어쩌다 어른?”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동촌성당 보좌

  

채널 ‘tvN’에서 방영중인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필요에 의해 극히 일부 방송만 선택해서 본 것이 전부지만, ‘어쩌다 어른’이라는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 이 프로그램에 대해 검색을 해본 기억이 납니다. 각 전문분야에서 활약 중인 명사들이 나와 특강을 하는데 왜 제목이 ‘어쩌다 어른’일까. 아니나 다를까, 처음 시작될 당시에는 출연자들이 매주 다른 주제 안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제목은 아마도 이영희 작가의 에세이 ‘어쩌다 어른’에서 따온 것 같아서, 그 책의 소개부문에서 제목의 진짜 의미를 찾아보기에 다다랐습니다.

 

“이 책은 ‘할 걸’과 ‘하지 말 걸’ 사이에서 헤매는 서툰 어른들에게 결코 완벽한 인생은 없으니 ‘그냥, 이렇게 지내도 괜찮다’라고 다독인다. 세상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고사하고, 하루치의 일과를 무사히 끝내기도 버거운 ‘어쩌다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 작지만 훈훈한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다.”

 

지난 호에 첫 번째 글을 작성하고 나서, 제가 언급했던 다양한 기준들 안에서 어떤 영화를 가장 먼저 다룰까 오랜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신학생 시절 교지를 통해 연재했던 글을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그 글은 2014년 당시를 넘어 여전히 국내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는 영화 ‘명량’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역사 고증,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과 같은 문제도 안고 있지만,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던 기록을 차례로 경신해가며 소위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의 놀라운 ‘영향력’이 그 영화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범국민적 영웅 이순신이 세련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다시 돌아왔고, 국가와 백성을 위한 그의 진심 어린 외침에 국민들은 흥행으로 응답했습니다. 뛰어난 역량으로 적을 무찌를 때마다 극장에는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말 그대로 영웅의 화려한 귀환이었습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도 영향력을 지니지만, 그 영향력에는 당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공감대와 시대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지독한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같은 영화의 메시지를 다수가 공유함으로써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통해 진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참된 어른’에 대한 갈증이 아니었나합니다. 자고로 어른이라 함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또한 한 집단의 ‘우두머리’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 곧 국가의 지도자나 정치가를 가리킵니다. 소위 ‘한자리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갈망했던 참된 어른이란, 그저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언제든 믿고 지혜를 구할 수 있는, 배울 점이 있는 어른이면 족했습니다. 수많은 어른들 가운데서 참된 어른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2014년 한 해. 스스로 어른이길 부끄러워해야 했던 시간들. 당시 극장가를 점령했던 영화 ‘변호인’과 ‘명량’은 이러한 의미에서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국민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힘들고 답답한 현실을 뒤엎을 만한 영향력 있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순신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두 어른이 모두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요. ‘명량’의 역사적인 흥행은 다양한 기록들로, ‘프란치스코 효과’는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들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기저기서 ‘참된 어른’의 부재에 대한 호소를 듣게 됩니다. 여전히 세상은 ‘어쩌다 되어버린’ 어른들로 가득하고, 저도 그 사이에 사제라는 이름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되어버렸다.’는 표현이 마음을 찌르는 듯합니다. 나이 먹고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운전면허를 따고, 배운 척, 아는 척 좀 한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뭣 모르던 신학생 시절부터 하느님을 등에 업고 여기저기서 어른대접을 받아온 저도 그냥 어쩌다 어른이, 아니 어쩌다 사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도 제게는 평생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예수님이라는 최고의 어른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저는 성장영화를 좋아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어가며 성숙해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기도,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장영화가 주는 감동이 묵직한 이유는 부족한 저 자신도 여전히 성장 중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스스로 어른이길 자처하는 사람치고 ‘어쩌다 어른’ 아닌 경우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성찰의 여지를 스스로 틀어막은 탓이겠지요. 세상은 그런 사람을 두고 ‘꼰대’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하지만 저 역시 이 사회의 한 ‘어쩌다 어른’으로서, 우리 ‘어쩌다 어른’들이 더 이상 ‘다들 그래.’, ‘그래도 괜찮아.’란 어설픈 위로에 만족하지 않고 고난과 시련에 맞서며 조금씩이라도 ‘참된 어른’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길 조심스레 응원해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코린 13,11)

 

이달의 추천(성장)영화

빌리 엘리어트(200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보이후드(2014), 인사이드 아웃(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