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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나의 공황장애 극복기


글 이재근 레오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마음, 나의 강력한 무기이며 방패. 마음먹기에 따라 큰 시련도 사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6월은 예수성심 성월,바로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묵상하는 달이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마음’이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4년 전 중국에서 사목활동을 할 때 겪었던 일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신자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쪽에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괴롭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리고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더니 결국 온몸에 마비가 오고 경련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심장마비구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죽음의 공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과 공포는 계속 되었고, 결국 함께 있던 신자분이 급하게 구급차를 불렀다.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진단한 결과 ‘이상 없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격한 운동을 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영양제를 처방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제와 같은 증상이 찾아왔고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구급차를 불렀고 병원에서는 역시 ‘이상 없음’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러한 고통과 통증이 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본당에 양해를 구하고 다음날 바로 한국으로 왔다. 병원예약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종합검진을 받았다. 일주일 뒤에 나온 검진결과 역시 '이상 없음’이었다. 살다 보면 아무 이상이 없어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대구에 있는 집으로 내려왔고 그날 저녁에 똑같은 증상으로 다시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게 내려진 병명은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는 공황증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공황증상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통증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이 일시적 혹은 지속적으로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한다. 예컨대 심장은 멀쩡한데 뇌에서 심장마비와 같은 통증 신호를 몸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심장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심장마비와 같은 통증을 겪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심장뿐만 아니라 머리 등 신체 어느 부위든지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어지럽거나 숨쉬기가 힘든 증상, 머리가 하얗게 되며, 곧 죽을 것 같은 느낌들이 모두 공황증상에 해당한다. 지속시간은 10분에서 최대 20분 정도이다. 이러한 공황증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두세 번 정도는 경험한다. 그런데 이 공황증상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공황장애 환자다. 공황장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늘 불안하다는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공황증상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은 점점 외출을 못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우울증에 빠지도록 만든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날부터 외출을 할 수 없었다. 문 밖으로 나서기만 해도 숨쉬기가 힘들고 또 언제 공황증상이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모든 일상

이 변해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것들이 불가능해졌다. 밖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침대에 누워서 내가 했던 것은 오로

지 텔레비전 시청뿐이었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결말을 못보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오늘밤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식욕도 없어서 밥을 안 먹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중국한인본당의 총회장님께 한동안 못 돌아갈 것 같다는 연락을 드리기 위해 중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을 켰다. 그런데 본당 신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문자가 와 있었다. 주된 내용은 내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신자분도 내가 없으니 싸울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며 빨리 오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이 문자들이 한없이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던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과는 달리 총회장님께 일주일 뒤에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다음날부터 나는 조금씩 밖으로 나갔다. 첫째 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가는 게 목표였다.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해서 ‘인지치료’라는 것을 함께 받았다. 인지치료란, 내 몸에 일어나는 공황증상들을 파악해서 이 증상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날들 중 어쩌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일주일이다. 가장 강하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가장 강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공황장애를 극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다섯 달이다. 이 시간 동안 중국의 신자들이 함께 견디어 주셨다. 미사 중에 내가 갑자기 주저앉더라도 말없이 기도하며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인지치료도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계속 해나갔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났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신부님은 완치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공황장애 덕분에 내가 얻은 깨달음이 있다. 바로 마음이 가진 힘이다. 모든 사람에게 ‘마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이자 방패이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큰 시련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혼자서 힘을 내지 못한다. 본당 신자분들의 마음 덕분에 내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를 사랑해 주고 지켜봐 주는 또 다른 마음을 필요로 한다. 그 마음과 함께할 때에 우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든든한 마음이 하나 있다. 항상 나를 지켜봐주는 멋진 마음이 하나 있다. 2000년 전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마음, 그리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봐 주고 힘이 되어 주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도 힘이 되어 줄 마음,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의 마음과 함께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힘들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를 지켜봐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믿으라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힘을 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