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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구대교구 교정사목봉사회 박영자(벨라뎃다) 회장
형제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


취재 박지현 프란체스카 기자

 

2022년을 시작하면서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코로나19가 계속되는 상황에도 담 안의 형제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있는 대구대교구 교정사목봉사회 박영자(벨라뎃다) 회장을 만나보았다.

교정사목봉사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대구대교구 교정사목활동은 1973년 7월 11일 ‘교도사목후원회’라는 이름으로 김동환(가롤로) 신부를 초대 지도신부로 시작됐다. 현재 교정사목 담당 김종률(스테파노) 신부, 김덕수(안드레아) 신부, 강유순(에스텔) 수녀와 50여 명의 봉사자가 교구관할지역 내 위치한 대구, 포항, 경주, 김천소년교도소와 대구구치소에서 재소자들이 갖는 죄책감과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깊은 상처와 소외감에 따른 그들의 고통에 위로, 용기, 희망을 주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형제들이 주님의 자녀되어 복된 삶을 살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왔으며, 코로나19로 요즘은 어떻게 봉사하고 계신가요?

봉사자의 재소자 접견과 구역장 및 구역모임, 레지오 회합(매주 1회), 성경공부(월 1회), 오카리나와 단소 모임, 최고수 미사(월 1회), 여자 재소자 미사(월 1회), 교리교육(월 2회), POP 교육, 금요일 오전에는 예비신자 교리(4팀)와 오후에는 주일미사 봉헌, 생일 및 축일 축하 행사, 성경 암송대회,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 명화 묵상, 피정, 부활과 성탄 때 구역별 장기자랑, 재소자들이 직접 준비한 연극 공연, 천주교·기독교·불교가 함께 하는 경로잔치 등을 해 왔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모든 활동이 중단된 가운데 신부님과 수녀님만 참석한 가운데 미사를 봉헌하고, 봉사자의 재소자 접견만 가능하다. 면회가족이 없거나 건강이 좋지 않는 재소자의 명단을 받아 미리 신청하는데 일반 재소자는 10분, 모범수와 1급수는 3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보다 그들의 심정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짧은 시간이라 접견 시간이 조금만 더 길면 좋겠다.

언제, 어떤 계기로 교정사목봉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약 35년 전 우연히 교도소를 방문하게 됐는데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재소자들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이후 재소자의 생일, 축일 준비를 위해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음식과 최상급의 딸기를 준비한다는 봉사자의 말을 듣는 순간 ‘네 자식만 자식이냐, 소외 받은 그들도 네 자식이니 그들을 돌보아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렸다. 그때부터 언제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며 그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직접 빵과 쿠키를 굽기 도 했고, 선풍기가 지급되지 않던 시절에 형제들이 무더운 여름을 잘 지내도록 인견 반바지 수십 벌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성악가인 동생과 악기 연주자인 조카와 둘째 딸이 구성한 음악회를 마련한 적이 있는데 가족들의 도움으로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조금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 남편과 함께하는 사진찍는 탈렌트를 활용해 직접 찍은 풍경, 꽃, 성화 사진의 뒷면에 좋은 글귀나 성경말씀을 적어서 재소자들의 생일이나 축일에 나를 밝히지 않고 선물로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이렇게 귀한 선물을 처음 받아 본다.’는 감동적인 답장에 더욱 정성껏 사진카드를 만들고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바쁜 생활 가운데 가족들, 특히 남편이 “남에게 드러나는 봉사보다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곳에 봉사하라.”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해줘서 너무 고맙다. 지금껏 봉사할 수 있었음은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주님의 은총이라 여긴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을 들려주세요.

‘모범수를 위한 가족만남의 시간’에 가족을 대신해 새벽부터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 갔더니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먹먹해진 적도 있고, 과거를 깊이 뉘우치며 출소전부터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한 형제는 출소 후 빠스카교화복지회에서 근무한 후 자립해서 주님의 자녀로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서 대학에 보내고 있는 형제도 있고,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며 주님의 품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형제도 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면서 앞으로의 삶은 후회 없이 살기 위해 각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전과자’라는 편견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기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항상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봉사하러가기 곤란한 상황도 있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형제들 안에 계시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는 기쁨에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다.”는 박영자(벨라뎃다) 회장은 “주님의 도구로 교도소의 봉사자로 불러주셨으니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그분 뜻에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서 “그동안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더불어 편견없이 기도와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길 부탁드린다.”면서 다음의 성경구절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