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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성당에서 온 감사편지
“저희는 난민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이성구 요한 신부|구룡포성당 주임

저는 구룡포성당에서 소임 중인 이성구 요한 신부입니다. 구룡포성당하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나 ‘과메기’, ‘대게’를 떠올리시겠지만 지난 9월 5일 태풍 ‘힌남노’의 집중호우 속에 며칠간 고립되었던 경주와 포항 남구의 한 성당이기도 합니다. 아직 회복은 더디지만 남아있는 주민들은 다시 장판을 깔고 생활 전선으로 복귀하여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는 교적상으로는 3백 명 정도지만 주일미사에는 백 여 명이 참례하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열심한 교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5일 아침, 바닷물이 가득해지는 만조 시간 때에 배수구를 잘 정리하고 창문을 잘 닫아두었기에 그냥 잘 지나갈 것을 기대하며 창밖을 보고 있는데 빗물이 갑자기 역류하더니 금방 성당이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과 성당 1층, 그리고 사제관에 물이 들이치면서 통신도 끊겼습니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던 뉴스도 집중호우로 지붕만 남기고 다 잠겼다는 마을 소식을 끝으로 끊어졌습니다. 게다가 늦은 오후, 교우 한 분이 수해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습니다.

성전 마당에 가득찼던 오물이 빠질 무렵, 가장 먼저 찾아온 친구는 주로 배를 타는 선원인 베트남 교우들이었습니다. 평일에도 일이 없으면 미사에 나오던 이 친구들은 익숙한 손길로 쌓여있던 쓰레기와 개흙이 되어버린 오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후일 들은 미담이지만 이 형제들은 고립된 마을의 어르신을 구조하고 2층 방에 모셔서 옷을 내어 드리고 세탁까지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찾아 온 다른 친구들의 양손에는 전기밥솥과 반찬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사를 준비할 겨를도 없는 우리를 위해 식탁을 차려 주었습니다. 식사 강복을 청하는 베트남 친구들의 식탁은 얼마나 큰 사랑이었던지 그 후 저희는 큰 힘을 얻고 날마다 젖어버린 장판을 들어내고 가재도구를 버리고 치우고 씻으며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교우 한 분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대부분의 가정이 침수되는 바람에 자녀들의 만류로 마을을 떠났다가 성당을 찾아오신 어르신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태풍과 홍수의 어려움은 참 크지만 지금도 잘 이겨내며 기도하고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구에서 2차 헌금을 해서 나눔을 시작하던 주일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희가 난민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많은 교우들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합니다. 성전을 지을 때처럼 교우들의 뜻을 물어서 새롭게 잘 복구하겠습니다. 계단이 많아 미사에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승강기도 마련하고 주님 마음에 드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저마다 도시로 떠나는 이 시대에 아름다운 시골 마을과 공동체가 소외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청해 봅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은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나눔에 감사드리며 기도로 보답하겠습니다.

구룡포성당 이성구 요한 주임신부 010-3510-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