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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비상(非常)의 즐거움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문화홍보국장

 

“이미 정상적이지 않은 즐거움을 누렸다면, 모름지기 예측되지 않는 근심에 대비해야 한다.”1)

 

다음 학기 강의 준비를 위해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입니다. 정상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편법을 써서 금전적인 이익을 보게 된다든지, 운 좋게 어떤 이익이나 좋은 일이 생긴다면 분명 기분이 좋고 즐거울 것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런 일이 많습니다. 불법이나 편법을 저지르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약삭빠르게 이익을 취합니다. “정상적이지 않은”의 원문은 “非常”입니다. 여기서 ‘상(常)’이란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한결같은 진리,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람의 도리 같은 것이지요. 비상(非常)이란 이런 상(常)의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늘 일어나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경우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일로 누리게 되는 즐거움이니 기쁨이 더 클 수는 있겠으나 대가가 따릅니다. 비상(非常)의 즐거움은 반드시 불측(不測)의 근심을 가져오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즐거움을 누렸다면, 반드시 예측되지 않는 근심이 올 것이니 거기에 잘 대비하라는 경구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정상적이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얻는 즐거움을 경계하라는 것이겠지요. 세상에는 온갖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속여 등쳐 먹는 이들이 많지요. 법을 잘 지키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비웃으며 불법으로 돈을 벌고, 탈세를 일삼으며, 불로 소득을 얻어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명 ‘빌라왕’이라 불리는 사기꾼들이 전세대출 사기로 사람들의 돈을 탈취합니다. 피해자 대부분이 월세에서 벗어나 겨우 전세를 얻었거나 아파트 전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서민들일 겁니다. 교통법규를 쉽게 어기고, 음주운전을 일삼으며,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에 탐닉하는 이들도 모두 비상(非常)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한나라 무제 때 제나라에 주보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식이 있었으나 별 재주가 없고 집안도 가난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다녔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장군 위청과 연이 닿았고, 위청이 황제에게 여러 번 그를 추천했지만 황제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글을 써서 당시 황제의 최대 근심사였던 흉노 토벌에 관한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본 황제는 대단히 흡족하여 그를 발탁했습니다. 이때부터 주보언은 아침에 글을 올리고 저녁에 황제를 알현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로 이웃 왕의 숨겨진 사생활이나 위황후 존립에 관한 일 등 다른 사람의 비밀스러운 일을 들춰내 황제에게 밝히는 방법으로 공을 세우고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대신들은 그가 자신들에 관해 황제에게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두려워하며, 뇌물을 보내 그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권세가 점점 커지고 재물도 불어나자 주보언의 횡포는 더욱더 악랄해졌습니다. 여기서 ‘정상적인 도리를 따르지 않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주보언의 말로는 어땠을까요? 그는 옛날 자기 고향 제나라에서 당한 수모를 앙갚음할 목적으로 당시 제나라 왕 유차경의 방탕한 생활을 황제에게 고발해 마침내 제나라의 재상으로 임명받았습니다. 제나라에 가서는 끝내 왕을 위협해 자살에 이르게 했습니다. 한 무제는 제나라 왕이 주보언의 위협에 못 이겨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주보언의 만행에 대해 일러바쳤고, 결국 주보언과 그의 일족까지 몰살당했습니다.

그가 황제에게 총애를 받고 있을 때 그의 집에 드나드는 빈객은 수천 명에 달했지만, 그와 일족이 몰살당하자 그들의 시신을 거둬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2)

다가올 위태로움은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도에서 벗어난 비상(非常)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면 예측하지도 못한 근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할 것이다.”(마태 24,36.50)

 

1) 『명심보감』, 「성심(省心) 上」, 4장. “旣取非常樂, 須防不測憂.”

2) 『사기(史記)』, 「평진후주보열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