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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야기
“제가 무엇이기에,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되겠습니까?”(1사무 18,18)
- 다윗이 사울을 섬기다


글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세 번째 이야기 : 1사무 18,6-29

 

“다윗은 사울에게 와서 그를 시중들게 되었는데, 사울은 다윗을 몹시 사랑하여 그를 자기 무기병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사이에게 사람을 보내어 일렀다. “다윗이 내 눈에 드니, 내 앞에서 시중들게 하여라.”(16,21-22)

 

다윗과 사울이 직접 만나게 된 이야기는 성경에 두 번 나온다. 비파 연주를 해 주러 사울에게 왔을 때(16,14-23)와 골리앗과의 대결 전후이다.(17,31-39.55-58) 사울의 시중을 들던 다윗이 그의 무기병이 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신뢰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골리앗과 대결하기 이전까지는 다윗이 왕궁과 베들레헴 사이를 오가며 아버지의 양 떼를 쳤기에(17,15) 사울은 다윗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은 듯하다. 강력한 필리스티아와 전쟁을 해 온 사울은 항상 뛰어난 전사들을 모아들이곤 했는데(14,52)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야말로 놓칠 수 없는 인재였다. “사울은 그날로 다윗을 붙잡아 두고,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18,2)

다윗은 출전할 때마다 승리하고 마침내 군인을 통솔하는 직책을 받는 등 점차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에게도 호감을 받게 된다.(18,2.5)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라는 여인들의 환호를 기점으로 다윗은 사울의 눈 밖에 나게 된다.(18,6-9) 사울은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임금으로 뽑힐 때 짐짝 사이에 숨어 있던 것을 보면 활달한 성격은 아닌 듯하다.(9,2; 10,20-24) 다윗에 대한 사울의 마음은 분노와 시기를 억누르다가 마침내 충동적인 살의(殺意)로 표출된다.

 

“사울은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창을 던졌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며 자기에게서 돌아서셨기 때문에 다윗을 두려워하였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사울은 다윗이 크게 승리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다.”(18,11-15)

 

다윗은 사울에게 항상 자신을 ‘임금님의 종’(17,32.34.36)이라고 표현하며 겸손하게 그를 섬긴다. 사울이 던진 창에 두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도, 창을 피할 뿐 사울을 떠나지 않는 다윗이 놀랍다. 그는 여전히 사울을 섬기면서 전쟁에 나가 연승을 거두었고, 점차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 천인대장으로 임명하여 멀찍이 떠나보낸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둘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 것이다.(18,10-13) 갈수록 사울의 두려움은 깊어져 마침내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으로 그를 죽일 의도를 품게 된다. 그는 다윗을 사위로 삼겠다고 제안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을 대신하여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18,17-25) 사울과 신하들의 부추김에 다윗은 각각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제가 누구이며, 이스라엘에서 제 아버지의 씨족이 무엇이기에,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되겠습니까?”(18,18)

“나처럼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임금님의 사위가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로 보입니까?”(18,23)

 

다윗의 생각은 자격지심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골리앗 일화에서 다윗은 소문을 확인하는 신중함을 보였고, 자신의 입신양명이 아닌 하느님 이름을 위한 선택을 했다.(17,45-47) 그에게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는 모습이 없다. 다윗은 사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속한 공동체(가족, 씨족, 민족)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안다. 자신이 한낱 양치기에 불과했고, 임금의 시중을 드는 악사, 지금은 전사로서 하느님의 대리자인 임금을 섬기는 위치에 있다는 자의식이 명료하다. 높은 자리나 명예에 대한 탐욕이 보이지 않는다. 사울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필리스티아인 백 명의 포피를 조건으로(18,25) 다윗을 설득한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다윗은 마침내 제안을 받아들여 공을 세운 후 사울의 둘째 딸 미칼을 아내로 맞아 임금의 사위가 된다.(18,26-27)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고, 자기 딸 미칼마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아 알고서는, 다윗이 점점 더 두려워져서 평생 그와 원수가 되었다.”(18,28-29)

 

사울의 ‘두려움’에 대한 사무엘기의 언급은 다섯 번 나온다. 그는 백성들의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하느님의 명을 어겼고(15, 24) 필리스티아인들과 골리앗이 두려워 전투에 나서지 못했다.(17,11) 나머지는 모두 다윗에 대한 두려움으로(18,12.15.29)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다. ‘두려워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라아’는 ‘경의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예. 시편 130,4) 다윗에 대한 사울의 ‘두려움’은 사실 ‘다윗과 함께 계신 하느님’을 향한 것이다. 주님께 불순종해서 내침을 받은 사울은 그분께 돌아서는 대신 멀어짐으로써 ‘경외심’이 아닌 ‘공포심’을 키워왔다. 그가 주님을 경외할 줄 알았다면 자신의 변덕과 패악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자신을 섬기는 다윗을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을 것이다. 사울의 눈에 들었을 때나 눈밖에 났을 때나 주님 안에서 충실한 섬김의 모습을 지켜내는 다윗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자기 위치를 깨닫고 다른 이를 섬기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러분에게 좋고 바른길을 가르쳐 주겠소. 여러분은 오로지 주님만을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만을 충실하게 섬기시오.”(12,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