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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기다려 주는 마음”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이곡성당 주임

 

어느 교우 부부와 대화를 하는 중에 자녀 이야기가 나왔다.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대화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자식을 키워 본 적이 없으니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저 아아, 그렇구나, 어렵겠구나, 하고 상상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크게 공감이 가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가치관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 되시는 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제가 태어난 나라는 후진국이었습니다. 먹고 사느라고 정신이 없었지요. 하지만 제 자식은 선진국에서 태어났으니, 자라 온 경험이 전혀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도 자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반세기 남짓한 사이에 절대적인 가난을 딛고 이런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사실 대한민국 말고는 달리 없다. 7~8년쯤 전만 해도 선진국 운운하면 섣부른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이 되었는가? 세계 10위권의 힘 센 나라가 된 것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어째서 ‘기본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데 선진국은 무슨?’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뭔가 아직 아닌 것 같고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랜 자기 비하의 습관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무엇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 빠진 한 가지는 나보다 걸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려 줄 줄 아는 여유가 아닐까.

앞만 보고 마구 달려가던 시절에는 주변을 살피고 속도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남들이 몇백 년 걸려 이루어 낸 성장을 50년 만에 달성했으니, 이런 과격한 전력 질주에서 체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낙오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아 줄 여유는 없었고, 희생을 좀 치르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 그런대로 먹고 살게 되었는데도, 그렇게 죽기 살기로 내달리던 습관이 여전히 좀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뒤처진 이들을 기다려 주는 데 익숙하지 않다. 무엇이든 급하게 이루어 내지 않으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고, 남을 밀치고서라도 앞줄에 나서야 안심이 된다. 아직 우리 눈에는 사람이, 돈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훨씬 귀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9-31)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끼시는 만큼 스스로를,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자주 함부로 대한다.

가난하면서도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겠지만, 또 한편 돈이 있다고 해서 꼭 여유가 생기지도 않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는 저절로 생기지 않고 따로 익혀야 한다는 것을, 그 진리를 지금 우리가 단체로 체험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여유는 물질적인 풍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한 가지, 우리가 더 노력해서 갖추어야 하는 한 가지이다. 선진(先進)이라는 말은 남보다 먼저 갔다는 뜻이다. 앞서 갔으니, 이제 숨차 하는 이가 없는지 돌아보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씨, 발걸음을 맞추어 같이 가는 마음씨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