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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공동체 안에서 자라나는 성소


글 이한웅 사도 요한 신부|후쿠오카교구 선교 사목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4월에 신입생 입학식과 신입사원 입사식이 있기에 곳곳에서 봄날의 설렘이 한껏 피어나는 시기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일본에서 만개한 벚꽃을 본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는게 새삼 믿기지 않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저도 타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이 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결코 변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첫 마음을 소중히하라고 덕담해 주시는데, 요즘에는 10년 전의 마음과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기 보다는 새봄을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마음과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봄,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불러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네 번째 징검다리를 살포시 놓아 보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일본에 온 이래로 지금까지 많은 공동체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고, 각각의 공동체 안에서는 늘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학생으로서 일본에서 지낸 기간 동안에는 특히 여러 공동체와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신학교 내에 ‘선교사목 실습’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신학교와 달리 일본의 신학교는 학기 중 매주 토요일과 주일에 모든 신학생을 인근 본당이나 시설로 파견합니다. 후쿠오카의 신학교에 있을 때에는 주교좌 대성당과 요시즈카라는 본당, 그리고 미나미카스야라는 본당으로 매주 실습을 갔었고, 부제가 되어 도쿄의 신학교에 있을 때에는 치바현의 마츠도라는 본당으로 매주 파견을 나갔습니다. 방학이 되면 신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교구로 돌아가게 되는데, 돌아갈 집이 없는 저는 당시 후쿠오카교구의 권유로 방학 동안 교구 내 여러 본당이나 시설로 파견되어 지냈습니다. 덕분에 신학생으로 지낸 3년 동안은 방학 중에도 여러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고, 늘 공동체 안에서 성소를 키워 갈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목 실습의 주된 내용은 예비신자 교리교육, 신자 교리교육, 주일학교, 전례 봉사자교육, 전례 봉사, 미사 강론, 병자봉성체, 상장례 봉사, 기타 잡일 등입니다. 학기 중에는 연학 시간을 제외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실습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바쁘고 힘들었지만 제가 파견되어 가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직이기에 기쁨과 보람이 더 컸습니다. 더불어 실습기간 중 본당 공동체가 더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게 되면 사제직을 향한 마음과 열정을 새롭게 키워 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파견된 본당의 병자봉성체를 다닐 때면 보잘것없고 죄 많은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성체를 영하며 감사의 눈물을 머금으시는 어르신을 보며 예수님께서 죄인인 저의 손을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을 전하고 계신다는 것에 과분한 은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선교사목 실습은 신학교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사목 일선에서 살아 숨쉬는 신학을 배우는 또 하나의 신학교였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오카 신학교에서 지내던 시기에는 큰 재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016년 4월 16일 새벽 1시 반경, 제가 머무는 후쿠오카교구의 쿠마모토현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해 여름방학에 후쿠오카교구에 청하여 한 달간 쿠마모토현의 중심 본당인 테토리 성당에서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자원봉사를 다녔습니다. 저는 가톨릭 카리타스재팬의 자원봉사센터에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일주일간 혹은 열흘간 휴가를 내어 멀리서 모여 왔는데, 출신도 종교도 나이도 직업도 천차만별이었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 안에서도 분명히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보며, 우리 모두가 사랑이신 하느님께 불림 받고 있으며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는 것을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아픔이 있는 곳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을 사랑의 도구로 쓰고 계시며,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일본에서 신학생으로 지내는 중에 만난 공동체를 모두 소개 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만남을 통해 저는 사제로 성장할 수 있었기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사랑도 삶도 되어가는 것,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기에 지금도 제가 머무는 공동체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가운데 하루하루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앞날에 실패와 어려움이 놓여 있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늘 사제로서 사람으로서 성장해 가길 바라며 새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 추신 : 다음 호부터는 일본에서 사제품을 받고 선교사목을 해 온 본당인 다이묘마치 주교좌 성당, 차야마 성당과 죠스이도오리 성당, 기타큐슈 유쿠하시 성당, 사가 타케오 성당과 사가 카시마 성당에 대해 순서대로 소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