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광야에서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이주 사목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들 중 하나가 ‘우리 교회가 이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 ‘다른 이주민 지원 시설, 단체들과 다르게 우리 교회가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아울러 사업이 아닌 진정한 사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이주민들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급박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여러 가지 교육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도와주어야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하기 때문에 무엇인가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는 길 위에서, 척박하고 메마른 광야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되고 믿었던 것처럼 이주민들 역시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살아왔던 이주민들이, 소위 세례는 받았지만 냉담하던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다시금 신앙생활을 하고 한국 생활을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가서는 본당이나 공동체의 봉사자로서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10년 만에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냉담하며 살아오다 고해성사를 보고 기쁨 속에 성체를 모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합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이주민들도 한인 공동체와 성당을 만들어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주민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주민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이주민들은 터치(Touch)를 좋아합니다. 성모상이나 예수성심상을 만지면서 기도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사제를 만나게 되면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Bless! po!(축복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사제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면서 축복을 청합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온 이주민들은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추기도 합니다. 베트남 이주민들은 성상을 꾸미고 미사 때 전통의상을 입는 것과 제대에 꽃 장식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씩 한국 신자분들이 이주민들의 미사에 참례하시고는 혼란스럽고 어색하다는 말씀들을 종종하십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언어적인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사 때의 성가 분위기나 사람들의 몸짓 역시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필리핀 이주민들은 미사 중에 팔을 벌리거나, 손을 잡는 경우도 있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성가를 부를 때가 많습니다. 베트남 이주민들은 팔짱을 끼고 미사에 참례합니다. 우리로서는 어색한 모습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신자들이 필리핀 공동체나 베트남 공동체의 미사에 참례하게 되면 짧은 순간이지만 이주민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집근처 본당에서 한국 신자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면 한국 신자들이 미사 참례하는 모습이 이주민들의 눈에는 지나치게 딱딱하고, 너무너무 거룩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주민들이 자기도 모르게 한국 사람들과의 미사에서 손을 벌리거나 성가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팔짱을 끼면 주변의 한국 신자들은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총을 보내는데 이주민들은 그 눈빛이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이주민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다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미사 중에 자신의 모국어로 목이 터져라 성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성체를 모신 뒤에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타국 생활에서 오는 불안함과 애절함, 그리고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주민들의 불안한 한국생활 만큼이나 미사에 참례하는 숫자도 들쑥날쑥합니다. 미등록 이주민(불법 체류자) 집중 단속 기간에는 단속을 피해서 집에서만 머무는 경우도 많고, 연말이나 월말에는 공장에서 잔업을 하느라 미사에 참례하는 이주민들이 확연하게 줄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미사에 참례하는 이주민들에게 “Long time, no see.”(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하면, “Sorry, because of overtime…but everyday I am praying.”(미안해요, 잔업 때문에… 그래도 매일 기도해요.)라고 쑥스러운 듯 대답을 합니다. 대학교에 가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한국인들이 잔업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주말 잔업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의 몫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한국 신자들처럼 여가 생활이나 생일 파티 때문에 미사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주민들의 삶에서 미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가끔씩 이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함께하고 있지만 세례성사나 고해성사, 그리고 혼인성사 때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온전히, 그리고 편안히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로 주례를 해주지 못할 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 신자들 중에는 “한국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데 굳이 미사를 따로 해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고, 베트남 이주민이든 필리핀 이주민이든 그들의 문화적, 신앙적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고 똑같은 이주민으로 통합시키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삶의 자세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신앙생활을 타국의 언어로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문화도 언어도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제3의 언어로 성탄이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함께 소풍을 간다고 생각해봅시다. 물론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좋은 자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면에 예수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신앙생활마저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이주민들에 대해서 환대를 강조하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 역시 이주민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원합니다. 우리 역시도 조금만 더 넓은 마음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 삶의 자세로 이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