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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입시설명회 단상


글 박경현(프란치스코)|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명문대학 입시설명회장은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정보가 실력인 시대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명문대학, 인기학과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고 입시전형방법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설명회장을 찾게 된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가 입시의 경향을 파악하고 아이의 진로를 위한 조언을 구하기보다 고급 정보를 포착하기 위한 첩보전처럼 비장할 때가 많다. 이는 교육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넘어 명문대학, 인기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듯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이의 특성이나 추구하는 가치보다 합격의 수단에만 매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 입시에서 성적의 결과만이 아니라 성장 과정을 통한 인성까지도 선발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을 직접 지도한 학교 선생님들의 영향력이 매우 증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입시에 관한 한 단순하고 우직하게 대처해왔다.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교육이 바로 최고의 입시 대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맡았을 때 수시로 변화하는 입시 제도를 접하면서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다 나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해 나가는 데에 전념했다. 그래서 가끔 입시설명회를 다녀오면 오히려 혼란스럽고 불안감과 불평이 많아졌다. 내가 챙기지 못한 부분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과 고등학교 교사로서 대학의 비위나 살피는 교육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뒤섞였다. 대학진학이 아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결코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열정만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가치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랑으로 포장된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강요보다 그들의 성장 과정을 보살피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늘 교단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창문쪽 맨 뒷좌석에 앉았던 이 아이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한 후 수학시간이었다. 거의 몇 달 동안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중간 정도 성적의 평범한 아이였다. 엄격한 두발 규정에도 불구하고 박해를 견디는 신앙인처럼 꿋꿋하게 긴 머리카락을 고수한 덕분에 선생님들로부터 ‘외모에 목숨을 거는 아이’, ‘선생님의 훈계를 건성으로 듣는 아이’, ‘수업시간에 산만한 아이’라는 평가가 학기 초에 이미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수학시간에도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앉아서 수시로 몸을 비틀거나 엎드려 문제를 풀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또 아무 때나 기지개를 켜는 등 선생님들의 평가가 과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핏 보면 딴 짓을 하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생각에 빠져 있고 풀이과정을 잘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몰두하는 것이 보였다. 복잡하고 긴 설명을 듣고 난 후에 손을 번쩍 들고는 “선생님! 이렇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데요.”라며 자신의 풀이방법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것이 얼마나 기발한 생각인지도 모른 채 산만하고 부적응아처럼 여겨졌던 그 아이의 남다른 수학적 재능을 발견한 나에게 그 녀석의 태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특성처럼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도 수학교사인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그를 치켜 세우기도 하고, 내 설명이 끝나면 가끔 그 아이에게 다른 풀이 방법이 있는지 한 번 더 묻기도 했다. 그런 덕분인지 그는 수학시간이 되면 표정이 밝아지고 눈빛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자리도 점점 앞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나의 제안에 따라 머리도 잘 깎고…. 경제적으로도 다소 여유가 있는 가정환경과 누나를 5명이나 둔 막내아들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에 대한 지도의 방법도 단번에 그려졌다. 꾸지람과 훈계보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는 수학시간을 그는 기다렸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학 동아리도 만들어 신나게 활동하도록 도와주었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같이 풀기도 하고 각종 경시대회에도 데리고 다녔다.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담임을 맡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워해 준 것도 그 녀석이었다. 내 말이라면 거역한 적이 없는 그는 “영어 성적만 향상된다면 ○○대도 가능하다.”는 다소 무리한 나의 기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는 당연히 교탁 바로 앞이었고, 수학시간에도 항상 영어책을 나란히 펴놓고 틈틈이 영어 단어를 외우는 등 이미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학입시에서 모든 선생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3년 오천고등학교로 무대가 바뀌었다. 부임한 직후 1학년 2학기를 시작하고 있던 아이들 중 서너 명을 교장실로 불렀다. 나는 수학교사가 아니라 교장으로 이 학교의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내신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지만 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준비는 거의 없었던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추억을 만들자. 그렇게 한다면 너희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말을 걸었다. 난생 처음 들어와 본 교장실, 그리고 낯선 교장과의 만남이 특별했는지 다음날 그들은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단정히 하고, 휴대전화도 해지하는 등 새로운 의욕으로 나의 관심에 응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결심과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틈틈이 교장실에 불러서 수학문제를 같이 풀어 보기도 하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가정 사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성적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들 가까이에서 변화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마웠다. 3학년으로 진급한 직후,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공휴일과 평일의 밤 11시 이후에도 학습실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며 성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 4층의 끝 방, 늦은 시간까지 환하게 켜진 불빛이 마치도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는 작은 촛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쳐다만 보아도 아이들의 뜨거운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틈틈이 찾아가 간식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기 전날 그 아이들과 같이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교장 선생님, 저는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후회가 없습니다. 시험의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합니다.” 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인생의 황금기인 40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랜디포시가 그의 〈마지막 강의〉에서 “비록 항구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여행도 너무나 황홀했다.”고 한 말을 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되는 것이 꿈만 같았다. 2016년 대학입시에서 이 아이들의 깜짝 놀랄 합격소식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와 선생님을 믿고 묵묵히 따라준 기특한 우리 아이들의 합격소식을 듣고 나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마음을 전했다.

 

“고맙다, 2년이 지났구나! 너희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변변한 공부방 하나 없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너희들의 눈망울을 처음 대한 것이….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크게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 교장실에 불려온 너희들이 나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단다. 몇 마디의 말과 관심에 너희들의 눈빛이 바뀌고, 그 열악한 여건에서도 꿈을 가져 주었지. 방황도 있었지만 꾸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기대는 이미 채워지고도 남았단다. 무엇보다 고3이었던 지난 1년, 짧지 않은 시간을 변함없이 걸어와 준 너희들이 너무도 대견하구나. 밤11시 이후에도 공부방을 열어달라고 건의를 하던 그날 너희들은 이미 성공한 아이들이었단다. 입시는 결과로 말하지만 공부는 그 자체가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4층의 끝 방,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단다.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린 깜깜한 밤, 온 학교의 문이 잠기어 있는데 몰래 올라가 창문 너머 숨소리도 죽인 채 책에 몰두해 있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고 돌아 나오면 내 머릿속에 너희들의 표정이 여운처럼 남아 있었단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꿈꾸던 대학에 이렇게 당당히 합격해 주었구나.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학생이었단다. 더 큰 꿈을 향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된단다. 그리고 잊지 말아라. 부모님과 누구보다 너의 합격을 위해 헌신하신 선생님들과 너를 성원한 모든 분들의 마음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기도할 것이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다. 너희들이 디딘 이 발자국이 후배들에겐 위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 2015년 12월 9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를 분석하기보다 나의 진심을 전하는데 전념했던 것처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그 제도의 해석에 매달리기보다 아이들을 격려하며 함께 했던 것처럼 온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의 입시지도는 없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전문 강사, 논술 전문가, R&E 전문가들의 도움없이 좋은 대학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서툴러도 우리 선생님들의 힘으로 해왔다. 제자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불철주야 아이들 곁을 지킨 우리 선생님들의 헌신보다 더 좋은 교육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명문대 합격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정이며,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육의 현장에서 의미있는 일을 위해 치르는 지금의 수고가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몸소 보여준 우리 아이들의 여정은 위대하다.